“엄마, 뛰어요, 숨어요!”
많은 북한 어린이들이 중국 공안을 발견했을 때 자동적으로 자신의 어머니에게 외치는 경고이다.
BASPIA(Blanket and Sponge Project in Asia)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인 이혜영씨는 “중국의 탈북 여성들은 안전을 갈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한국에서 설립된 BASPIA는 아시아 시민사회의 이해와 협력 증진, 인권 신장에 헌신하고 있는 NGO이다.
탈북 여성들에게 중국에서의 안전은 생사가 달린 현실적 문제이다. 최근 보도를 보면 중국의 몇몇 지방정부는 중국에서 오래 거주한 탈북 여성들에게 신분증과 영주권을 발급했다고 한다. 이들 탈북 여성은 중국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다.
지난 3년간 8차례의 여행을 통해 경제적으로 낙후한 중국 내륙과 동북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 여성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던 이혜영 대표 역시 최근 탈북 여성과 관련된 ‘좋은 징조’를 보고 있다. “탈북 여성들이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중국의 지방 공안들은 탈북 여성과 그들의 중국인 남편 등 가족의 사진을 찍고 신상명세를 서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공안들은 탈북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사법적 관할 구역에서는 안전할 것이며, 체포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줬다는군요.”
구체적인 조사와 토론이 필요하긴 하지만,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정책 변화는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탈북자 문제가 나올 때마다 모든 사람이 남한을 쳐다봅니다.” 이혜영 대표는 말을 이어갔다. “중국은 중립입니다. 우리는 작지만 중요한 변화에 더 많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들은 바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중국 지방 정부의 결정은 결국 중앙정부와 일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침묵에 싸여있긴 하지만, 잠재적인 움직임들이 중국의 북한 이주자 문제에 중요한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에 거주하는 많은 탈북 여성들은 1990년대 말 북한의 대기근 때 국경을 넘어왔고, 중국인과 결혼해 농촌지역에 눌러앉았다.
현재 이들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가정을 이룬 지 10년 가량 됐다. 이혜영 대표는 “중국 지방정부들이 이 같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 여성들은 더 이상 북한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어머니들입니다. 만약 그들이 북한으로 되돌아간다면 중국에서 이룬 가정은 해체되고 많은 중국 남자들이 과거의 ‘낡은 버릇’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게다가 탈북 여성들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취학 연령이 됐습니다. 이들을 중국의 공적 교육 시스템에 편입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 여성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이들이 그 동안 중국에서 겪었던 고통을 감소시켜주지는 않는다. 이혜영 대표가 취재 여행에서 만났던 25살의 은숙씨(가명)는 8년 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왔을 때 절망적이었다고 한다. 은숙씨는 한 식당 주인의 권유로 조선족 남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조선족 남편이 정신 장애가 있고 간질에 시달린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은숙씨의 시누이는 “오빠가 소와 부딪친 적이 있다”고 말했고, 은숙씨는 그 집안을 먹여살리는 유일한 부양자가 됐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일은 이 어린 북한 여성이 시누이에 의해 강제로 5개월 된 태아를 낙태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의 불행은 중국 신분증이 주어지면서 좀 나아졌다. 그녀는 신분증을 발급받음으로써 북한으로 추방되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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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지린성의 한 농촌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이 6살 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 여성은 중국 남자와 결혼해 8년간 살았다. (photo BASPIA)
이혜영 대표는 “은숙씨의 눈이 노동력과 성적 착취를 당해온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면서 분노로 불타올랐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중국에서 나머지 인생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아이의 낙태를 거부했고 현재 자신이 보호하며 키우고 있습니다.”
탈북 여성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 농촌의 균열을 막아주고 있다. 현재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를 노인한테 맡기고 도시로 떠나고 있다. 이는 탈북 여성들에게 노동력과 부양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여성이 부족한 농촌 마을의 성 불균형을 막기 위해 중국이 탈북 여성들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추측도 있다.
탈북 여성과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중국 학교에 편입되면서 심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도 이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7~8세의 이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서 어머니가 체포됐던 불행한 기억들을 대부분 갖고 있다. 이 아이들은 또한 어머니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끼고 있다. 그들은 과연 어머니의 정체성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어쨌든 중국 지방당국이 이 아이들에게 영주권을 주는 것은 점차 쉬워지고 있다.
중국에 있는 북한인에게 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는 탈북 여성들에게 경제적·사회적 도움을 주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이혜성 대표는 “중국의 탈북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좀더 다양한 자원과 전망을 갖고 움직일 수 있는 확고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한 일은 BASPIA 같은 NGO의 역할이다. NGO들은 그런 역할을 하면서 BASPIA가 내건 정신처럼 ‘담요’와 ‘스펀지’의 개념을 적절하게 조합해야 한다. 담요가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의미한다면 스펀지는 사회적 갈등과 구조적 문제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상징한다. 이렇게 해야만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탈북 여성에 대한 최근 중국의 정책 변화는 한 가닥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혜성 대표는 “다양한 관련자들이 함께 노력해야만 앞으로의 일들이 용이해질 수 있다”며 “한국 정부도 중국과 북한 정부에 북한 주민들의 이주와 국제결혼을 위한 합리적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과감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
/ 리제트 팟기터 | 196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생. 남아프리카 대학에서 문학과 불교 전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일하다 2006년 7월부터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의 서울주재기자로 활동. 대한항공 기내지인 ‘모닝 캄(Morning Calm)’과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도 한국의 문화와 여행에 대한 글을 정기적으로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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