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낙서장 2015. 8. 20. 18:51

요즘은 하루가 참 빨리 지나갑니다. 꾸물꾸물하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가 후딱 지나갑니다. 그래도 이젠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게 그나마 살만 합니다. 겨울에는 봄, 여름이 제일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여름이 되니 더워 아무 것도 못하고 쩔쩔매니 여름도 좋은 게 아니구나 싶습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하고 싶은걸 못하고 쉬기만 하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니 짧은 인생에 시간이 아깝습니다.

 

한 사람에게 세월이 무한정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뭐 산 것 없이 스무 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고 산 만큼 더 살면 60이 되어 환갑이 닥칩니다. 요즘 환갑은 나이도 아닌지라 그냥 흐지부지 지나갑니다. 좋은 세월은 짧습니다. 그 나머지 세월은 산다는 게 즐거움 보다 고통과 희생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동식물이나 사람이나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도 되는 게 없습니다. 물 한잔도 입에 넣기 어렵습니다. 제정신 가지고 살아가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토네이도가 있습니까. 쓰나미가 있습니까. 물이나 전기 걱정하고 삽니까. 권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위협적인 사람이 있습니까. 이만하면 살만하지 않습니까.

 

세상일은 참 신기합니다. 사람도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동물도 별의별 동물이 다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을 지배하여 먹을 것은 그리 힘들지 않지만 동물은 아래에 있는 먹이사슬 개체가 줄어들면 서서히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먹을게 없어서 멸종되는 것입니다. 산의 다람쥐가 점점 줄어듭니다. 하위의 어떤동물이 먹을 것이 없어 줄어들면 따라서 직상위 동물도 줄어들다가 나중에는 멸종됩니다. 또 환경이 너무 좋으면 뚜렷한 이유없이 놀라 죽고 무리에 치어서 죽어서 적정한 개체수가 될 때까지 확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큰 짐승은 풀을 뜯어 먹이를 하도록 하고 작은 것은 동물을 잡아먹도록 하고 어정쩡한 것은 동식물 두 가지 다 먹게 조물주가 배려했습니다. 만약 큰 동물에게 풀이 아닌 동물을 잡아먹게 했다면 덩치큰 동물이 배불리 먹으려면 남아날 동물이 없어 결국 먹을게 없어서 큰 동물도 멸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물원 호랑이들은 주로 닭고기를 먹는데 닭고기 먹은 호랑이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난뒤의 살은 닭고기가 아닌 호랑이 고기라는 것도 신기합니다. 닭고기를 먹었는데 어째 호랑이 고기가 되었을까 싶습니다. 또 식물은 흙의 토양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 먹고는 잎은 푸르게 꽃은 붉게 피우는 것도 신기합니다.

 

자연은 하나하나 따져봐도 참 신비한데 겨울이 아닌 더운 여름에 우박이 내리는 게 난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또 장대비가 내리는데 하늘에 고드름이 달린 것도 아닌데 종일 장대비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합니다. 또 어떤 때는 바늘 끝처럼 가는 안개비를 뿌리는데 도대체 하늘에 체가 달려 거르는지 도무지 신기합니다.

 

예전에는 농사 때문에 논의 군데군데에 웅덩이가 있어 벌레 서식도 쉬웠지만 이젠 작은 웅덩이도 없어지고 물 고일만한 곳은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마을마다 샘도 다 못 먹게 내 버린 채 오래되었습니다. 왕잠자리나 고추잠자리, 호랑나비, 토종매미, 노랑나비, 황새, 제비, 산토끼, , 족제비, 찔룩새, 노고지리(종달새), 뻐꾹새가 거의 자취를 감추거나 감추어지는 추세입니다.

 

물론 집단사육하는 동물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인위적으로 먹이를 줘서 키우는 것이라 자연의 것이 아닙니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지만 무슨 어린이 동요부르는 것같습니다. 덩치가 좀큰 토종매미는 이렇게 울지않고 아주 힘차게 성악가가 가곡을 부르듯이 우는데 토종은 농약등등 때문에 다 사라지고 외국서 몰래 들어온 작은 매미만 가냘프게 울고 있습니다. 어떤 군에서 하는 곤충박람회는 그런 의미에서 사라져간 동물을 알 수 있어 뭔가 깨닫게 합니다.

 

도랑을 흐르는 물도 마르고 강마저도 거의 물이 말라 흐르지 못합니다. 사람의 인정이 메마르면 물도 흐르지 않는다더니 이젠 발 담글만한 물조차도 찾기 어렵습니다. 물이 흐르지 않으니 그나마 약간 물이 고인 곳도 이끼가 끼어 발 담그기에는 불순물이 많아 더럽습니다. 사람의 도덕이 타락되니 곡식도 양분이 예전만큼 영양가가 없다고 합니다.

 

농사기술이 발달해 재배한 과일이 비료를 주어 사람 입맛에 맞게 맛과 모양이 있고 커졌지만 에너지가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 사과 한개 먹으면 요기가 되었지만 지금은 두 개 먹어도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예전에 일하다가 다쳐 피가 나면 밭의 흙을 바르면 이내 나앗지만 지금은 흙을 바르면 낫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덧만 난다고 합니다. 벌에 쏘이면 재래된장을 바르면 이내 부은곳이 가라앉고 치유되었지만 지금은 아예 바르려 하지도 않고 발라도 낫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다 죽이고 나만 살면 무슨 사는 맛이 나겠습니까. 앞집 누구도 있고 옆집 누구도 있고 뒷집 누구도 있고 동창생 누구도 있어서 만나면 인사하고 어려우면 도와주는 게 사람사는 이치가 아니겠습니까.

 

서양사람 조상들은 수렵생활을 주로 하여 분배에 능합니다. 동물을 잡으면 누가 처음 발견했나, 누가 명중시켜 힘을 못쓰게 했나, 누가 완전히 꼬꾸라지게 결정적으로 잡았나 등을 따져서 고기량을 분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 이익을 철저히 따지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누가 한몫을 가져가고 누가 두몫을 가져가고 누가 세몫을 가져가는지 가려야 했기 때문에 관사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관사란 영어의 aan, the등입니다.)친구끼리 식사를 하러가도 각자 돈내는 사람이 서양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밥 먹으러 먼저 가자고한 사람이 돈을 냅니다.

 

반면에 우리조상들은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70년대만 해도 농촌인구가 70%를 넘었습니다.) 자기 농사일할 때 동네사람 불러 도움을 받고 동네사람 일할 때 가서 도와주고 해서 네것 내것 구별이 잘 안됩니다. ‘자기 마누라우리마누라라 하고 자기집우리집이라 하니 서양사람이 보면 뭐 저렇게 재산 관념이 없는 멍청한 사람들이 있나 싶을 겁니다.

 

본인에게 직접들은 얘긴데 어떤 한국여성이 독일남편과 결혼하여 친척 친구를 뒤로한 채 독일에서 살게 된 모양입니다. 어느 날 남편이 당신은 내가 좋아 당신 엄마가 좋아하더랍니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엄마가 좋지했더니 그 소리에 충격을 받아 6개월 넘게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사람이 안절부절 하더랍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생활이 곤란에 빠지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어버이 수령밖에 모르는데 통일이 되었다고 북한 사람과 결혼해서 제대로 결혼 생활이 되겠습니까. 물론 세월이 흐른 뒤에라면 문제가 그리 크지 않겠지만 아무런 준비단계도 없이 얼굴 이쁘다고 급하게 결혼했다간 오래가지 못합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좀 못산다고 생각하는 중국사람과도 얼굴이 이쁘다고 결혼한 한국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우리말도 모르고 애를 낳아도 아이교육이 제대로 안됩니다. 애는 엄마가 어릴 때 많이 가르쳐야 하는데 아는 것은 중국말뿐인지라 아예 가르치지 못해 곤란을 격는 사람들을 더러 봅니다.

 

마찬가지로 결혼도 비슷한 학력과 경제능력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는게 제일 좋다고 봅니다. 그래야 서로 비슷한 환경에 자라서 의견대립이 없어 이해하고 마음이 맞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라 어떤 목적으로 결혼한다면 실망하는 지경에 이르기 쉽습니다.

 

우리나라가 1961년에 세계에 107개국이 있었는데 그중 잘 살기가 지금의 아프리카 미개국보다 못산 87등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10위권전후에 있지 않습니까. 물론 나라가 부강하면 따라서 국민이 기분이 으쓱해지는게 아니겠습니까. 특히 외국여행을 해보면 국력에 따라 대우가 달라집니다. 대만에서 살아보니 거류증 만들 때 신체검사결과를 첨부해야 하는데 미국과 같이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인정해 선진국 국민에게는 신체검사결과물을 첨부 하지 않아도 발급해 줍니다. 같이 갔던 외국학생 맥시코애는 대변검사까지 필요한 신체검사를 받아야 돼서 신청서를 제출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세계에서 대우받는 국민이 되려면 그 민족의 인구가 5천만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라야 한답니다. 그에 해당되는 나라가 세계에 일곱나라 밖에 없는데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과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사는게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도 하고 열심히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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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때의 여성의 생각

서양여성은 원래 개방적이라 자기 몸을 달라는 사람에게 대체로 주는 편이다. 게다가 젊은 여성들은 자기에게 달라는 사람에게도 주고,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도 준다고 한다. 서양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도 대체로 서양화되어 에 대한너그럽다.

 

일본은 서양문물을 워낙 빨리 받아들여 그만큼 성도 일찍 개방되었다. 개방되기 전인 오랜 옛날 전쟁으로 남자씨가 마를 정도가 된 적이 있었는데, 남자가 없으면 나라가 존속하지 못하므로 젊은 여성으로 하여금 종족보존차원에서 어떤 남자든 몸을 달라하거든 다 주라며 기모노라는 겉옷만 입게 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이 험한 산길에서 남자와 결합해 애가 생겼다해서 山崎(야마가끼), 밭에서 만들었다 해서 田中(다나까), 등나무옆에서 만들었다해서 佐藤(사또), 높은 다리에서 생겼다해서 高橋(다까하시), 저 등나무아래에서 생겨서 伊藤(이또; 조선침략한 장수의 이또이름이 히로부미’), 숲속에서 당했다해서 (모리)등등 모두 이런 성을 가졌다. 한 여자가 한 남자와만 관계할 수 없었으니 여러 남자에게 당했을 것이므로 한 엄마가 낳아도 아이마다 성이 다 달랐다. 기모노를 입으면 아주 편한 데 팬티가 없으므로 조이는 것도 없고 답답하지 않다. 기모노를 입은 여성이 소변을 보려면 선 자세로 기모노를 양옆으로 벌리면 남자처럼 서서 오줌을 눌 수 있다.

 

중국은 1900년대 초에 공산당이 들어서고 나서는 가족도 때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라면 반동으로 몰아 고발했는데 돈을 벌기위해서는 몸을 팔거나 무슨 짓이든 다하니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오직 한반도 그것도 (북한은 먹고살기 어려워 간부가 아닌 남편을 가진 많은 여성이 성매매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니) 남한여성만 그래도 예전의 전통을 쬐끔 갖고 있다.

 

말하자면 예전의 여자는 남자한테 손목만 한번 잡히면 그때까지의 고상한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아주 순수한 여성이었다. 더구나 처녀성을 잃으면 더욱 말할 나위도 없이 그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 예전에는 남자에게 당한 여성이 여관에서 밤을 지샜으니 외박하고 아침부터 집에 돌아갈 수 없으니 다방으로 밤새 시달리게한 그 남자와 같이 내려와서는 그 남자 앞에서 눈물을 쭐쭐흘리는 여성이 많았다. “이제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나 책임질꺼제라는 뜻일 꺼다.

 

서양여성들은 처녀성자체를 우습게 아는데 첫사랑이란 단어가 없다. 혼전 경험이 많은 여성은 수도 못 셀만큼 많은 남자와 다 자 본 듯한데 무슨 첫사랑이 있겠는가. 첫남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아련하다. 아예 일상생활에서도 알던 사람이건 모르던 사람이건 만나면 키스로 시작하는데 무슨 東洋式異性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겠는가.

 

요즘의 여성운전자들이 운전하는걸 보면 여성본능의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으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나는 여자니까 너덜 남성들은 연약한? 여성을 아끼고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니냐”. 몇 십년 전만 해도 운전하면 남자만 했는데 여자 운전자가 하나 생기면 홍일점 여자운전사하고 신문에 보도되곤 했지만 요즘세상에는 낮에는 여자운전사가 더 많은 세상이 되어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남자만 독점하던 변호사도 급격히 여자변호사가 생기기 시작해서 많아졌고 여자중개사도 마찬가지로 생겨났다. 이때부터 남자는 마누라에게 기가 죽어지내게 되었다.

 

남성상위시대에서 여성상위시대가 온 것이다. 아마 잠자리에서도 여성상위 아닐까 싶다. 월급쟁이 남자들은 아내가 겁나 아침에 승용차를 못 가져가고 버스타고 돈 벌러 나가면 집에 남은 아내는 무료해 남편이 남겨둔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드라이브를 즐긴다. “나를 건드리지 마라! 절대 피해주는 게 아니다. 운전이 쬐께 서툴뿐이다. 배째라!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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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꽃잎은 날리고

봄에 꽃이 많이 피지만 꽃이 핀다고 한 철에 들고 일어나듯 다 피는 것이 아니다. 복이 온다고 한꺼번에 감당 못할 만큼 오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눈으로 보기에는 눈에 보이는 정경이 다 꽃이면 좋겠지만 그럼 꽃만 있어야 하니 다른 것이 없어도 안 된다. 꽃은 따뜻한 봄날에 피는 꽃이 제일 많다. 물론 같은 봄이라도 날짜를 달리해서 순서대로 꽃이 피지만 어느 한 기간에만 왕창 피었다가 왕창 시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봄을 가장 좋아하고 다음으로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좋아한다. 봄과 여름은 나무도 울창하고 꽃도 피지만 가을부터는 단풍이 들어 스산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면 잎은 다 떨어진다. 단풍을 보면 나는 왠지 허전하다. 떨어져 낙엽이 되기 전 잠깐 붉은 빛을 띨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뿐 나뭇잎의 신세는 처량한 신세인 것이다. 그것도 나무줄기와 뿌리에 영양분이 다 빨리고 나니 창백해진 모습으로 우리네의 못 살 때의 동생에게 젖을 다 빨려 마른 엄마모습 같다.

벌이 한동안 없다 싶더니 요즘은 예전의 그 토종벌인지 아니면 외래종인지 모르지만 그나마 꽃에 벌이 많이 보인다. 그런데 이놈 벌들이 제일 아름다울 것 같은 막 피어나는 꽃에는 절대 앉지 않고 한창 피어있는 꽃에만 앉는 것이다. 열여덟 처녀가 한창 아름답게 보이는데 사람눈에 아무리 아름다워도 벌에게는 막 피어나는 꽃은 꽃도 아닌 모양이다.

낙엽을 밟는 것이 낭만적이지만 낙엽위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좀 더 피어있을 것이지 왜 이리 빨리 떨어졌남? 특히 봄날에 보는 핑크빛 꽃잎들은 꽃다운 나이 때야 당연히 설레이지만 나이가 든 노인들의 가슴에도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 일 듯하다. 누구나 자기 늙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사니까. 다 깨닫게 될 때쯤이면 이미 백발이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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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어도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는 낫다

내가 득을 보려는 생각으로 행동해서 득을 보면 상대는 손해를 보게 된다. 복권이나 하찮게 생각하는 행운권 같은 것도 내가 한 사람 차지함으로서 누구 한 사람이 얻지 못하게 된다. 남이 얻어야 할 것을 내가 얻으면 또한 인 것이다. 죄는 나쁜 것인데, 남에게 해로운 일을 하여 내가 득을 얻지만 그 대가는 내가 어렵게 쌓은 복을 상대에게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일을 하면 복이 내몸에 생기고 나쁜일을 하면 업력()이 생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복권에 당첨 되는 것도 내가 가진 복을 주고 그 댓가로 당첨이 되어 현금을 받는 것이다. 물론 내복을 가져가고 대신 당첨되었으면 하고 바란다고 복권에 당첨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애에 모든 것은 또한 때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이처럼 내가 주어야만 받을 수 있다.

 

나쁜 것이란 남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해치는 행위인 주식투자, 복권, 행운권, 거짓말, 남을 업신여김, 남을 때리는 것, 욕하는 것, 남을 비난하는 것, 질투하는 것 등이다. “사촌 논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이 있고 보면 가까운 사람이 재물을 불리는 것은 나의 자존심을 건드려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옛말은 사람이 수천년 동안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으로 조금의 틀림도 없다. 살면서 나와 관계없는 일에 불평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시비를 걸거나 투정 부려서는 내게 해롭다.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석가모니부처님과 예수님의 자비나 사랑은 차원 높은 우주의 이치를 말한 것으로 자비사랑이 두 단어는 뜻이 같다. 사랑으로 남을 측은하게 보면 남을 절대로 해치거나 성나게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비난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독교에도 합장하여 기도하는 자세가 있듯이 불교에도 스님이나 신도들은 기도로 합장한다.

 

사람은 이전 (前生)에 한 일에 따라 복이 많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복을 다 탕진한 채 태어난 사람도 있다. 다 탕진한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태어나자마자 불구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자폐증등 희귀병에 걸려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아기가 잘못 태어났다면 아기의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일 수 있고 부모의 잘못이 아닐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부모가 잘못하여 아기가 잘못 태어날 수도 있는데 예부터 부부관계를 금하라는 시간에 관계를 가져 애가 생길 경우이다. 그런 날은 聖人 탄생일, 벼락이나 번개치는 날, 폭우가 쏟아지는 날, 음력 정월초하루나 섣달그믐날, 술에 만취했을 때, 몸이 허약하거나 병이 들었을 때, 임신 중일 때, 몹시 피로할 때 등이다.

 

살면서는 나쁜 짓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복이나 죄는 죽을 때 갖고 가고, 태어날 때 도로 가지고 태어나 그것이 일생을 좌우한다. 현세에서 복이 많게 태어난 사람은 하는 일도 쉽고 편하게 살 수 있지만 죄를 많이 지닌채 태어난 사람은 현생에서 그리 나쁜짓을 하지 않았어도 무얼 해도 되는 일이 잘 없다. 복이 많은 사람은 하는 일이 재미있어 산다는 것이 즐겁지만 복이 없는 사람은 하는 일에 늘 지치고 산다는 것이 괴롭기만 하다.

 

사람의 육신은 진정한 자신이 아니다. 죽은 다음 환생하면 또 다른 모습의 육신의 옷을 걸치고 그전과는 완전히 딴사람으로 태어난다. 육신은 환생한 것이지만 元神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전생에 알던 사람을 현생에서도 이어서 친구로 되거나 친척이 되거나 가족으로 되거나 어떻든 또 다시 만나게 된다. 전생에 친구였다가 현생에 부부로 될 수도 있고 전생에 원수(怨讐)였다가 현생에 父子관계로 되는 경우도 많다. 부모가 보는데서 자식이 사고로 일찍 죽는 것은 대부분 그 자식과 전생에서 원한 관계가 있을 경우가 많다.

 

육신은 죽을 때마다 버리지만 元神이라는 영혼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 나 자신이다. 지상에서 사람이 옷을 입듯이 영혼이 육신을 걸치게 되면 추워도 괴롭고, 더워도 안 되고, 배고파도 못 참고, 아파도 힘들며, 게다가 남이 잘되면 질투하고 남이 나보다 못하면 업신여기게 된다. 그래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같이 살 것도 아니면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내 맘에 안 드는 얼굴이라고 업신여기지 말고, 무엇을 잘 모른다고 남을 깔보지 말아야 한다. 남이건 자식이건 밉다고 두들겨 패거나 못살게 굴어서도 안된다.

 

나쁜 사람의 생각은 음성(陰性;음기를 가진)이므로 가능하면 이런 사람은 멀리하면 좋다. 늘 나쁜 생각만 하고있고 그것이 목소리가 되어 발산하면 상대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갈 데를 잘못 가 주당들었다는 말을 했다. 주당이 들면 객귀를 물리쳐야 하는데 요즘은 주당이 들었을때 병원을 찾아 과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소리는 듣는 사람의 몸을 이롭게도 하고 해롭게도 한다. 어떤 소리가 이로운가? 자연의 소리인 빗소리, 파도소리, 폭포소리, 바람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등이 이롭다 사람의 목소리 중에는 이로운 것도 해로운 것도 있다. 선량한 사람의 따뜻한 음성은 이롭지만 욕심만 그득한 사람의 찌든 목소리는 해롭다

 

노래를 조용히 부르면 좋지만 떠들며 시끄럽게 부르면 해롭다. 음기를 발산하기 때문이다. 요즘의 음악은 제정신 아닌 사람이 많아서 시끄러워야 좋아하므로 시끄러운 노래를 불러야 유명가수가 될 수 있다. 보는 것이든 들리는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라야 좋다. 그림도 유명한 서양화가 피카소 고흐, 레오날드 다빈치의 비싼 그림이라고 꼭 좋은 것이 아니다. 괴상하게 그린 그림이 아름답지도 않지만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많은 서양의 옛화가들의 그림은 음기를 발하는 것이 많다. ‘모나리자의 미소까지도.

 

음악도 고전적인 클래식이 그나마 좋은데 이것도 전자기기로만 들을 수 있으니 생음악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시끄런 음악보다는 낫다. 그런데 지상에서 최고의 陽性的인 음악과 율동이 있으니 미국 뉴욕션윈예술단의 션윈공연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션윈의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그러하고 무용수의 선량하고 순수한 율동이 그러하다. 이런 공연은 영성이 있는 예술가가 말하는데 너무나 신비하고 신성하여 몸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단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세계적 고전무용수의 움직임 동작은 아주 선량하고 신선한 에너지를 관객에게 안겨준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대륙은 이 공연을 보지 못하므로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관람 겸 여행을 와서 보고 간다는 것이다.

 

몸에 해로운 것에는 또 술, 담배가 해로운데 술은 인류가 생기면서부터 술이 있었다. 술은 육신을 갖고 살아가면서 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 고통을 잊기위해 인류초기에 만들어낸 것이다. 술이 예전부터 없고 요즘에 만들었다면 아마 술이 아니고 진통제나 마취제를 만들었을 것이다. 남자는 돈을 못벌어도 고통이고, 얼굴이 예쁜 여자는 결혼하고도 치근대는 남자가 많아서 몸을 지키기에 고통스럽다. 말하자면 술과 담배는 고통에 대한 치료제인 셈인데 지금사람들은 그걸 아예 아픈 데가 없어도 일단 마시거나 피우고 보는 습성이 생겼다. 말하자면 눈이 아프지도 않은데, 안약부터 넣고 보는 것과 같다. 약이란 약은 다 부작용이 있는데 부작용이 전혀 없는 약은 없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가 없어 먹으나마나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수명은 정해져 있는데 살기 힘 든다고 목숨을 끊어버리면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지 않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 저승으로도 가지 못하고 인간세상의 원래 수명이 끝나는 날이 올 때까지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귀신이 된다. 자살한 사람은 죽은후 다 이렇게 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고독하고 괴롭게 지내야 한다. 저승도 죽었다고 혼자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며 저승사자가 동행해야 갈 수 있다. 그래야 죄값을 심판받아 염라대왕에게 갈 곳을 배치받는 것이다.

 

또 나쁜 것에 담배가 있는데 담배는 한국에 들어온 지 4백년이 겨우 넘었으나 조선중기이전의 조상님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담배는 미개인이 개발한 것으로 한마디로 피우면 아주 몸에 해롭다. 담배를 빨면 가슴이 뻥 뚤린다는 착각을 하고 끊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깥에 나가 시원한 공기를 쐬면 가슴이 뻥 뚤리니, 담배로 가슴을 뻥뚫을 생각은 버려야 한다. 고통스러워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다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복이 되어 돌아온다. 모든 일에 고맙게 생각하면 그 마음이 즐거움으로 바뀌어 마음이 유쾌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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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마음 낙서장 2015. 4. 7. 20:12


 


평소 아무리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개밥그릇 하던 그릇에 밥을 담아 먹으라하면 개밥그릇으로 쓰던 그릇인 걸 알면 먹지 않을 것이다. 그릇이 깨끗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퐁퐁으로 씻어도 개밥을 담았던 그릇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기 오줌 그릇으로 한번이라도 사용한 적이 있는 컵으로는 물컵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더럽지 않을 텐데 이상하게도 거북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보기 어려워졌지만 예전엔 천연두 후유증으로 얼굴에 곰보인 사람이 종종 마주칠 수 있었다. 이런 사람을 사람들은 얼굴이 얽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세수를 깨끗이 하고 나와도 늘 사람들은 가까이 하기 싫어했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좋은 사람인데도 얼굴이 얽었다는 사실 하나로 늘 열등감 속에서 살아야 했다. 마찬가지로 피부가 검은 흑인을 보면 예전에는 연탄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아무리 잘 씻어도 씻은 것 같지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검둥이 씻으나 마나.” 라는 말이 생겼다.

    

또 예전에는 키 큰 아이를 키다리뻐다리라고 하여 키가 크면 놀림감이 되었다. 동양 사람은 대체로 키가 작아서 작은 것은 흉이 되지 않았다. 요즘은 서양을 따라가려는 욕심에, 키도 서양 사람처럼 큰사람이 미남,미녀이고, 코도 서양 사람처럼 높은 코를 흉내내 높이고, 완전히 서양을 따라가지 못하면 한스러운 듯하다. 우리나라차 자동차 영업소는 일본서 안팔려 오래전에 철수했고 일본은 우리독도를 뺏아가고 있는데도 친일파인지 어떤사람은 아직도 자동차는 일본산이라야 되고,화장품도 미제나 프랑스제를 귀하게 여겼거나 지금도 귀하게 여기고 있는 여성이 많다.

 

 

예전 사람들은 휴지가 없어 짚을 말아서 똥구멍을 닦고 손수건이 없어 아이들은 코가 나오면 옷소매로 코를 닦아 소매가 코로 반질반질했다. 그게 일상생활하며 볼 수 있었으니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면 애가 그러고 다니면 아마 기절할 것이다. 이제 겨울이 지나갔지만 핸드크림이 없어 겨울이 되면 어린애 손등이 쩍쩍 갈라져 피가 흐르고 동상도 흔했다. 그래서 크림을 동동구리모라 했는데 북을 동동치며 구리모를 팔러 다녔기 때문이다. 크림뿐 아니라 요즘 파운데이션 대신 그때는 분을 발랐는데 요즘의 가루 땀띠약처럼 생겼다.

 

 

요즘이라면 신고하겠지만 그때는 서리라고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이 많았다. 주로 참외서리, 밀서리(밭의 밀을 주인 몰래 잘라서 밀을 불에 구워서 먹는 것; 그러나 요즘은 밀이나 보리가 예전처럼 많이 경작하지 않고 대부분을 수입해서 먹는다), 수박서리,닭서리가 많았다. 주로 여름에 서리가 많았는데 더우면 주인이 원두막에서 주로 낮잠을 자서 서리하기 쉽기 때문이다. 요즘은 밭에 원두막이 거의 보기 드물다. 그때는 서릿군이 많아서 늘 밭을 지키고 있어야 하므로 원두막이 밭마다 다 있었다.

서릿꾼이 와서 참외를 훔쳐가도 그냥 쫓기만 하지 요즘처럼 경찰에 신고하고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요즘이야 사람들 질이 워낙 나빠서 나쁜 일을 많이 해서 경찰도 많이 필요해졌지만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 기껏 과일이나 몇 개 훔쳐갔기 때문이다. 남의 것을 많이 훔쳐 돈을 받고 팔 정도로 많이 따가지 않았다. 돈벌기위해 훔쳐가 파는 도둑이 생긴 것은 불과 몇십년 전에 많아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머리를 댕기머리를 땋고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말세라는 말이 있다. 아마 이런 풍습은 우리나라에서 80년대 이후에 생겼을 것이다. 그때부터 미래 人類인디고 아이들또는 블루아동이라 불리는 특수한 체질의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이제 서서히 인종갱신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죄가 많은 데 어떻게 아름다운 생을 기약하겠는가. 성경에서도 2천년(예수이후)후에 말세가 올 것이라 했고 석가모니께서도 2500(기원전 5백년에 불법을 펴심; 55백년=5×500)후에 말세(징후;서기 2천년±20)가 와서 성이 극도로 문란하고 인륜도덕이 타락해 인간이 만든 법으로 인간을 다스릴 수 없는 시기가 된다고 했다.

 

지금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중엔 사람이 아닌 마귀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싸움만 하고 돈만 밝히고 거짓을 일삼고 하지 않겠는가. 그게 마귀가 아닌가. 대중을 위하라고 뽑아놓은 사람이라는게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그 자리를 한 번 더 차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대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거짓말하고 있다는 감각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남을 위해 일하고 어떻게 남을 도울까를 생각하고 남을 사랑하고 그러면 덕이 쌓이고 병도 앓지 않고 살 것이다. 거짓말 하지 말고 착한 마음을 갖고 어려워도 참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병이란 다 욕심으로 나쁜 일을 해서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질 필요도 없고 먹고 살만큼만 가지면 되는 것이다.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는 것은 자식들끼리 싸움질을 하게 부추키는 꼴이 되는 것이다. 왜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재산을 남겨주는가. 자식은 교육으로 족하다. 자신을 위해, 인류를 위해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만에서 돌아온지 벌써 두달이 훨 넘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너무 좋았다. 제일 좋았던 게 집 부근에 사우나가 있는 것이었다. 일본도 그렇지만 대만은 대중목욕탕이 없다. 물론 온천이란 게 있지만 한 두 시간 외곽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큰마음 먹어야 하고 또 비싸다.

 

한국은 네계절이 있어 봄은 온화하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살살하고 겨울은 추워 좋고 11월말까지 후덥지근한 여름의 대만보다 10도나 낮으니 덥지않아 좋고, 매일같이 내리는 비도 오지 않아 좋고, 눈에 보이는 음식은 다 먹을 수 있는 식사와 반찬이라 좋고 아무에게나 우리말로 말할 수 있어 좋다.

적도가까이 위치할수록 여름 밖에 없고 남극이나 북극에 가까울수록 겨울밖에 없다. 사계절있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겨울이 없는 나라는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갑자기 생각나는데 어느 탈북한 북한 아가씨가 교육이라곤 받지못해 남조선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고 하는걸 들었는데 보거나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다.

 

또 노트북이 잘못되어 돈을 이체하지 못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사는방의 온도가 에어컨이 없어 평균 32도 였으니 집에 있으면 보통 샤워를 매일 열 번 가까이 해야 한다. 숙제가 많을때는 샤워하는 시간허비가 너무 지나치다고 느껴졌다.

 

한국은 습도가 낮아 쇠붙이 기구가 녹이 쓸지않아 좋다. 사계절이 있는 게 뭐그리 자랑스럽냐 싶었는데 눈 내리는 겨울이 있다는 것이 참 좋다. 겨울만 있거나 여름만 있는 나라사람들은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계절이 있거나 겨울이 긴 나라는 식물과 동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 반면에 여름만 있는 나라는 일년내내 꽃이 피고 식물이나 동물이 빨리 자란다.

 

우리나라는 못살다가 갑자기 잘 살게 된 나라이고 대부분의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는 예전에 잘살다가 요즘은 궁색한 편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꼴찌로 못살고 남아공보다도 못살아 전세계에서 꼴찌에서 몇 번째였다. 게다가 자원도 별로 없고 해서 희망이 보이지 않았는데 건국 이승만대통령과 독재를 한 박정희대통령 탓에 급진적으로 잘살게 되었고 전두환 대통령이 유치한 올림픽이 전대통령이 퇴임후인 1988년 개최된 이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많은 외국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아침5시면 거의 매일같이 체조하러 학교운동장에 가는데 네거리 신호등은 차가 별로 다니지 않지만 신호등을 켜놔서 신호를 받으려는 차량들이 140km까지 과속하기 때문에 나다니기 겁난다. 물론 운전자부터 나무라겠지만 그전에 깜박등으로 바꾸면 해결될 일이다. 깜박등이 깜박이면 기다리지 않고도 바로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 주의해서 지나니 자연히 과속이 없어진다. 신호등은 차를 완전 정지시키므로 짜증스럽고 유류낭비도 심하다. 예외가 있겠지만 모든 네거리신호등을 새벽6시 까지는 깜박등으로 운영하면 좋겠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자 마자 왜 밥 안 나오나 따지는 급한 성격의 한국인이라 녹색신호등이 켜지면 신호위반 안되려 과속주행하는 게 습관인 듯 싶다. 시속70km로 달리다간 신호위반 바로 걸릴테니까.

 

과속을 없애려면 교통량이 적은 곳은 가급적 노란색 깜박등으로 바꾸면 되고 아니면 차량에다가 시내에서는 70km로 고속도로에서는 100km로 밖에 달릴수 없도록 속도제어센서를 부착시키면 된다. 고속도로 올리면 센서가 작동하여 아무리 밟아도 과속이 안되면 과속을 할 수 없다. 깜박등은 밤11시부터 아침6시까지 운영할 만한 곳이 수두룩하고 낮에도 신호가 필요없는데 신호등이 달린곳은 깜박등으로 하면 된다. 교통량이 뜸한 곳은 아예 신호등 자체를 없애거나 설치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교통얘기가 나왔으니 네거리 동시신호를 늘려야 한다. 예를 들어 동시신호로 하지않고 직진20초 좌회전20초라면 각 10대가 지나가 반대편에서도 각 10대가 지나갈 것이므로 40초동안 직진과 좌회전에 40대가 지나갈 수 있다면 직좌동시신호로 하면 훨 많은 6,70대도 지나갈 수 있다.

 

예를 들어 달리던 차가 그 속도대로 가면 더 가속하지 않고도 300m를 갈 수 있다면 이 차를 신호등이 잘라서 멈추게 하면 다시 기름을 소모해야 그 300m를 갈 수 있으므로 필요없는 연료가 소모 되고 하나의 네거리에서 하루에 수천대 서게 되고 전국에 네거리에서 다 이렇게 서게 되면 얼마나 유류낭비가 심하겠는가.

 

동시신호의 장점은 달리던 차가 그속도로 진행이 가능하고 또 좌회전이 1차선일 때 2차선에서 미처 1차선에 진입하지 못한 차량은 다음 유턴지점까지 가서 다시 이곳 네거리까지 돌아올 차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2차선에서 1차선 진입하기 위해 버틸것이고 그러면 2차선은 이 차로 인해 한 차선이 죽게 되어 지나가야할 차가 못 지나게 된다. 이럴 때 동시신호면 2차선에서도 좌회전이 가능하다.

 

또 직각방향의 치량이 직진할 때 같은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청색등이 오는데 청색등이 같이 왔으면 같이 꺼지지 왜 도중에 적색등으로 바꾸는지 모를 일이다. 직진중에 같은방향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보행자가 안전한데 도중에 끊어 못가게 하고 다음 신호까지 기다리게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적색으로 바꿔도 교통에 이로운점이 없다. 단지 우회전하는 차들이 우회전 맘대로 하는 것이지만 우회전은 횡단보도에 녹색등이 와있어도 건너는 사람이 없거나 이미 건너가고 있으면 우회전 하면 된다.

 

차량이 도로상에서 어떤 목적지로 빨리 찾아가 도로를 비워줘야 차량이 줄어들어 교통이 원활해지는데 없어져야 할 차들이 도로상에 계속 머물러있게 되면 정체가 되기 마련이고 정체가 되면 시간이 급박해지므로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하는 운전자들은 위반을 하기 마련이다. 위반해야 예정시간에 도착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동부의 암네빌(Amneville) 동물원에 사는 과일 박쥐. 2010년 4월 22일 촬영.(Getty Images)

프랑스 동부의 암네빌(Amneville) 동물원에 사는 과일 박쥐. 2010년 4월 22일 촬영.(Getty Images)

 

2020년 에볼라 대책 지금 수립해야, 미뤄서는 안 돼

 

에볼라는 40여 년 전 중앙아프리카에서 처음 발발했다.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에서 에볼라가 발생해 280명이 사망했다.

당시 전염병 조사를 위해 자이르를 방문한 외국 인 질병 조사관 중 한 간호사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황열병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그녀의 혈액이 벨기에의 피터 피오트 박사에게 보내졌다. 피오트 박사 팀은 간호사 혈액에서 발견한 신종 바이러스를 벨기에 북부의 강 이름을 따서 에볼라라 명명했다.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실린 ‘에볼라 그때와 지금’에서, 조엘 G. 브레먼과 칼 M. 존슨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1976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얌부쿠 미션 병원(Yambuku Mission Hospital)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소독하지 않은 주사기와 주삿바늘 사용으로 퍼졌다. 병원 직원 17명 중 13명이 에볼라에 감염됐고, 그 중 11명이 죽었다. 병원장과 벨기에 선교사 3명이 사망했을 때 병원이 폐쇄됐다.”

하지만 콩고(자이르)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사람한테서 발견된 최초 장소가 아니다. 에볼라는 수단 나자라(Nzara) 마을의 솜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에서 처음 발생했다. 이것이 에볼라 발발 시초였다.

공장 노동자 3명이 에볼라에 걸렸지만, 그들은 같은 마을에 살지도 같이 어울리지도 않았다. 근무 시간에도 그들은 서로 접촉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 3명 각각은 에볼라에 어떻게 감염된 걸까?

에볼라 숙주, 과일박쥐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연구팀은 2000명 직원이 일하던 나자라 솜 공장 지붕에 과일박쥐 수천 마리가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연구팀은 박쥐를 대상으로 에볼라 항체 여부를 검사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이동하는 과일박쥐가 에볼라 바이러스의 자연 매개체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여겨진다.

피오트 박사는 최근 논문 ‘더 나은 질병 통제를 위해 야생 동물에서 에볼라 지도 만들기’에서 과일박쥐의 에볼라 숙주 가능성을 언급했다. “에볼라에 감염된 과일 박쥐는 병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박쥐는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연결해 주는 저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중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박쥐 3종과 서아프라카에서 사는 박쥐 4종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항체가 발견됐다.”

과일 박쥐와 직접 접촉한 동물과 사람은 에볼라에 감염될 수 있다. 또, 이동 중에 박쥐가 떨어뜨린 배설물이나 과일을 통해 에볼라가 땅 위의 가축이나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전염될 수 있다.

서아프리카 에볼라 발발

지난해 겨울부터 현재까지 서아프리카를 휩쓸고 유럽 및 미국에까지 퍼진 에볼라 창궐은 가히 폭발적이다. 예전 에볼라 발생으로 말미암아 감염자와 사망자와 수를 훨씬 넘어섰다.

최근 에볼라 발발은 2013년 12월 기니의 외딴 숲 속 마을에 시작했다. 그 첫 희생자는 과일박쥐에 물린 2살 난 유아였다. 아기는 에볼라에 감염돼 앓다가 사망했다. 이후 아기의 누나와 어머니도 에볼라에 감염돼 목숨을 잃었고, 이들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을 통해 에볼라는 퍼져 나갔다.

5개월 뒤, 에볼라는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사람에게서 차례로 나타났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에볼라 감염으로 5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일 “나이지리아엔 더는 에볼라가 없다”라고 선언했다. 스페인과 미국에서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종사자가 에볼라에 감염돼 격리 치료를 받고 있다.

이번 에볼라 발발은 바이러스가 인구가 밀집한 지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과거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정글의 외딴 지역에서만 발견됐다.

보호복과 마스크, 이중 장갑을 착용했음에도 에볼라는 매우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보인다. 보건 당국은 훈련과 지침을 더욱 개선해 실시해야 하고, 병원 간의 협력과 활발한 정보 교류가 긴밀히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에볼라가 처음 발생한 지 40여 년 동안 무엇이 변했기에, 에볼라가 이토록 창궐하게 된 것일까?

마구잡이 삼림벌채

호주 도심 가로수 박쥐가 매달려 있다. (Getty Images)

호주 도심 가로수에 박쥐가 매달려 있다. (Getty Images)

2009년 10월 소니아 샤(Sonia Shah)는 온라인 잡지 ‘예일 환경(Yale Environment) 360’에 기고한 ‘새로운 질병의 확산: 기후 연관성’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남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적도 아프리카의 열대지방 도심지의 캐노피 나무를 보라. 마치 종유석이 털에 덮인 것처럼 과일 박쥐 거대 무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이 서식하던 숲은 불도저로 밀어버려 줄어들었고, 화전을 일구는 농부들이 불을 질렀다. 또, 기후변화로 메말랐다. 이 때문에 과일박쥐는 점차 사람이 사는 곳을 침입했고 과수원과 도시, 농장의 과일나무에서 살아가기 위해 적응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는 5가지 종류 중 자이르형 에볼라이다. 이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중앙에 있는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서아프리카에 있는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의 숲으로 어떻게 이동했을까?

과일 박쥐는 1년에 수천 km~1만여km를 이동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아프리카 세 나라 모두 국토 75% 이상을 삼림 벌채했기 때문에 사실상 에볼라 숙주인 박쥐와 사람은 만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것은 2007년 콩고 서부에서 발생한 에볼라의 원인이었다.

아프리카 탈출한 에볼라

1989년 에볼라 변종이 미국 버지니아 주 레스턴 시의 한 질병연구소에 있던 필리핀산 원숭이에서 나타났다. ‘레스턴형 에볼라’로 불리는 이 다섯 번째 에볼라 바이러스가 당시 사람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2009년 필리핀 북부지역의 한 돼지 농장에서 레스톤형 에볼라가 다시 발생했다.

온난화와 아프리카 기후에 영향을 준 강우량 변화, 그리고 마구잡이식 삼림벌채는 에볼라 숙주인 박쥐를 인간의 문명으로 몰아넣었다. 다음 시기 에볼라 발발은 머지않아 일어날 것이고, 지금 겪고 있는 에볼라 재앙보다 더 치명적이고 더 광범위할 것이다.

정부와 세계 보건 기구는 다음 에볼라 발발에 맞서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들여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창궐할 에볼라를 막아내기 위해 전문가 양성 및 훈련을 더욱 큰 규모로 실시해야 한다. 2020년 에볼라 대비책은 지금 수립해야 한다.

과일 박쥐의 이동 경로 연구와 함께, 박쥐와 야생동물 고기를 먹는 음식 문화 바꿔야 한다. 또, 사람을 자연의 음지에서 분리했던 자연의 장벽을 재건하기 위해 삼림 관리와 지속 할 수 있는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국제사회와 지구촌 보건 기구의 협력과 집중적 노력이 없다면 다음 에볼라 발발은 지구촌 전역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수습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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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중국어로 말을하려할 때 문장구조를 알아도 단어선택이 너무 어렵다. 사전에 나온 한글로 설명된 뜻은 많은 부분은 죽은 설명이나 같기 때문이다. 사전의 단어는 뜻이 다르거나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너무나 많다. 나라마다 중국어를 자기나라 말로 바꾼 후라야 그 뜻을 알 수 있는데 그나마 영어가 가장 뜻이 정확한 듯이 보인다. 한국어로 번역된 사전의 거의 70%는 사전을 가지고 그뜻을 모두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 뜻으로 번역하면 뜻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어의 뜻이 우리가 쓰는 단어와 뜻이 달라서 쓰임새가 다 다르고 성조도 중국과 대만은 좀 다른 것이 더러 있다.

 

말하자면 사전은 시대흐름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예전에 표현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 게다가 대만에서 쓰는 번체글자를 보고 간체로 어떻게 쓰는지 알아야 뜻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번체글자를 한글로 설명한 사전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으로 유학가지 않으면 번거로운 부분이 많다. 물론 번체의 병음을 알면 간체로 접근할 수가 있지만 번체와 간체가 모양이 완전히 다를 경우는 어느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 간체번체를 다알아야 한다. 대만에서 중국어 공부하려면 그렇다. 그래서 한글로 설명한 사전의 간체를 보면 먼저 번체로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해야 한다. 간체번체 두 가지 사용이 배우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번거롭다. 모든걸 꼭 두 번씩 찾아야 그뜻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대만에서 공부하다가 중국에서 배우면 나을까 싶어 다시 중국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중국에서 공부하다가 인터넷문제 식사문제로 다시 대만으로 온 사람도 더러있다. 왜냐하면 대만은 그나마 선진국이지만 중국은 인터넷부터 봉쇄되어 해외 사이트 접근이 전혀 안된다. 말하자면 네이버나 다음같은 데로 들어가면 우리나라 소식도 알수 있지만 중국은 전국이 철저히 인터넷을 봉쇄해 전혀 들어갈수없게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독재를 하다보니 외국의 중국에 대한 비평이나 사실을 알면 인민이 동요되기 때문에 북한처럼 거짓말을 계속하고 공산주의가 제일 좋은 것으로 알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에 온 중국학생은 어떤가. 그들은 국가에 충성을 맹세하고 국비로 유학하는 선발된 학생들이라 중국을 사랑하는 맘이 아주 대단하다. 외국 나가도 안 변할 만한 인재를 내보내지 외국문물을 받아들여 중국의 그릇된 모습을 비판할 만한 인재는 외국으로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상교육을 확실히 해서 내보낸다고 한다. 중문을 배우러 중국가면 인터넷이 막혀 생활에 지장이 많다. 말하자면 웹사이트 들어가는 곳마다 전부 중문사이트 밖에 없으니 배우러 간 사람이 무슨 뜻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또 뜻도 모르고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은 인터넷은 어디든 다 들어갈 수 있다. 한국 포털에 들어가 뉴스도 보고 유튜브 동영상도 보고 세계가 어떤 변화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서는 이게 안되니 아주 따분할 것이다.

 

 

대만사람은 헤어스타일이 3,40년전의 캐캐묵은 헤어스타일이고, 신발이나 의상도 디자인이나 색상이 좀 뒤떨어진다. 기후조건으로 보아 유행이 존재할 수 없는 유행은 오직 꿈속의 일인거 같다. 지금 전세계는 한국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이란 나라의 예술이나 문화수준은 알면 알수록 뭔가 신비감이 있기 때문이다. 또 돈만 있으면 이만큼 살기좋은 나라는 세상어디에도 없다. 돈은 사람을 지배할 수도 있다.

 

4년제대학 총장과 학장, 그리고 초중고 교장은 다 같이 교장이라 부른다. 총장이나 학장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장은 흔한 명칭이니 초등학교교장이나 대학교장이나 부르긴 같이 부르지만 물론 대우는 엄청 다를 것이다. 3학년선배학생보고 2학년후배학생이 학장이라 부른다. 학장은 이렇게 쓰여진다. 그러나 특별한 존재인 총장을 우리나라는 2년제대학의 장도 총장이라 부르는데 참 질서가 없다. 4년제나 2년제나 어찌 다 같이 부를 수있는가. 마치 병원이나 의사를 동경하는 사람이 시계수리점을 차려놓고 시계병원이라 부르는 것과도 같이 들린다.

 

사람은 같은 죄를 범했을때 법적처분이 같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인 것은 아니다. 다 같으면 부모는 어떻게 있으며 선배는 어떻게 있으며 형님은 누님은 어떻게 있는가. 또 같은 형님이나 선배라도 자리를 앉힐때는 다 같은 자리에 앉을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타고난 복이 다르고 심성이 다르고 선악이 다 달라서 행동하는 것도 다르고 죽는 시기도 다르다. 일을 많이 하면 많이 버는 것이고 일을 않고 놀면 못버는 것이다. 치른만큼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대만사람들은 개를 참 좋아하는 것같다. 개를 어린애처럼 취급하고 개가 아무렇게나 똥을 싸놓으면 아주 잘 치우는 편이다. 똥을 누어놓았다싶으면 곧장 치워 개똥을 밟을 일이 없다.

 

 

또 대만의 하나의 자랑거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인이나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습관이다. 겨우 자리를 차지해 방금 앉았다가도 다음역에서 노인이 타 자리가 없다싶으면 바로 일어나 양보한다. 이건 한국보다 나은 것같다. 또 하나 나은 것이 있는데 이건 도저히 한국사람이 아마 따라 잡지 못할 것같다. 뭐냐하면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안쪽 좌석부터 앉는 습관이다. 그럼 평시 안쪽 좌석이 비어있고 통로쪽 좌석에 앉은 것은 뭔가. 그것은 안쪽사람이 먼저 내려서 자리가 빈 것이다. 반드시 안쪽에 앉는데 안쪽에 앉으면 통로쪽에 앉는 것 보다 불편하다. 왜냐하면 내릴 때 통로쪽 사람앞을 지나서야 내릴수 잇기 때문에 양해를 구해야 하고 내리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한국같으면 다 통로쪽에 앉을 것이다. 물론 장거리 타는 사람이야 탈 때 다 같이 타고 내릴 때 다같이 내리므로 경치구경하기 좋은 창쪽을 선호한다. 그러나 버스나 지하철은 오랜시간 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처럼 쉬운 자리를 먼저 앉지않고 반드시 안쪽부터 앉아 다음 사람이 편하게 통로쪽 자리에 앉도록 배려하는 습관이 베어있다. 이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만은 돈의 단위가 원인데 쓰기는 원으로 써놓고 사용할때는 콰이치엔이라 한다. 아예 콰이치엔 자체도 안쓸때가 많다. 그냥 180원이면 이바이빠가 끝이다. 우리나라말로 할 것 같으면 이바이빠는 일백팔인데 108원이 되지만 대만은 180을 그렇게 부른다. 그럼 108은 어떻게 말하는가 그것은 이바이링빠라 한다. 일백영팔이란 말이다. 팔앞에 영을 넣어 108로 하는 거다. 정부에서는 타이완달러란 말을 쓰지만 공항같은데서 가격표에 NTD180이렇게 표기할 뿐이다. 뉴타이완달러의 약자이다. 달러면 값을 말할때도 달러라 써야 하지만 달러란 말은 어디에도 쓰지 않는다.

 

 

식당에 가면 99원짜리가 만약 학생은 10%디씨해준다면 계산상 9.9원이 되지만 10원을 디씨해준다. 그래서 90원을 주면 반드시 1원을 거슬러 준다. 그럼 10%디씨를 뭐라 하는가 9(9)라 부른다. 말하자면 90%의 가격으로 할인해 준다는 뜻이다. 그럼 25%디씨는 그럼 어떻게 표시하는가. 75()라 한다. 그럼 앞의 9는 실제 9가아니라 90임을 알 수 있다.

 

 

대만사람은 중국과 같이 재물을 아주 갈망한다. 출입문마다 재복을 달라고 부적같은걸 붙인다. 정초에 붙이면 1년간 붙여둔다. 1년 지나면 다시 은행같은데서 선물을 주는데 우리는 달력을 주지만 여긴 부적을 선물한다. 또 절을 거의 하지않고 향을 피워 향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선채로 신에게 청한다. 복을 달라던지 소원을 성취시켜달라던지 재물을 달라던지. 우리는 음력11일 조상에게 제사지내고 친족과 형제들끼리 맞절을 하지만 여긴 산사람에게는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절하는 풍습은 아마 세계에서 한국만 있는 듯 하다.

 

 

산골짝에 다람쥐 아기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가 먹이감을 주워서 자기집으로 가져가는걸 이렇게 표현한 것을 누가 소풍가는 것이 아니라고 우겨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물학자들은 잘알겠지만 누가 뭐라하던 그들은 이런일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모든일에 너무 고집스럽게 따지는 것도 살면서 즐거움이 없다. 새가 우는걸 누구는 그냥 운다고 하고 누구는 슬피운다고 하는데 그건 그걸 듣는 사람의 감정이 어떤가에 달렸다. 기분이 좋은사람이라면 노래한다고 할것이고 슬픈감정이 있는 사람은 슬피운다할 것이다.

 

 

세월은 사람의 나이를 먹게하고 마음이 변하게 하기도 하는데 제일 안타까운 것은 나이들면 아무리 아름답던 사람도 아름다움은 없고 추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탱탱하던 얼굴이 주름이 지면 보기 흉하다. 나이들어 탱탱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러므로 어차피 늙을 거라면 남을 위하기도 하고 자신도 즐기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사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남을 편하게 하면 기분좋은 말을 상대로부터 듣게되고 남에게 베풀면 보답이 있기 마련이다. 10만원이 있다면 만원짜리 선물을 열명에게 하면 아마 대부분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선물할 때 기분좋고 선물 받을 때 기분좋고 이리저리 조은거 아닌가.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이말은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렇다고 스무살도 안된 젊은이가 노는 것만 밝혀서야 안되겠지만 다리에 힘있을 때 자주 놀러도 다니고 친구와 얘기도 나누고 이게 아름다운 생활이 아닌가 싶다.

 

 

지구는 2억년쯤전에 만들어 졌고 지구를 만든후 목적없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이내 신이 사람도 만들어 사람의 기원도 대체로 2억년쯤 된다. 처음에 만든 인간은 인간이라 할수없을 만큼 동물에 가까웠지만 그렇다고 동물은 아니었으나 남녀구별이 없었다고 한다. 신들의 진화를 거쳐 지금의 남녀로 구분이 되기는 18백만년전부터 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 거인들은 온순한 공룡을 가축으로 길렀는데 지금의 사람이 큰동물을 가축으로 기르듯이 길렀던 것이다. 물론 말이나 소는 지금 사람보다 월등히 크지만 온순하여 사람말을 잘 따르고 농사를 짓는데 이용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보다 작은 동물인 개는 길들여 집지키는 동물로 사람과 함께 살았다.

 

 

그래서 피라미드는 지금의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5-10m키의 거인들이 손으로 돌을 날라 건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태평양의 모아이 석상도 거인들이 만든 것이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과학자들은 지금의 사람이 만들었다는 가정하에 문제를 푸니 풀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5,6척남짓한 身長()의 인간은 그렇게 무거운 돌을 들지 못한다. 그때는 지금의 기중기나 포크레인이 없었으니 당연히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수 있는데도 틀에 박인 과학자들은 이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선진 사고를 가진 과학자들은 이걸 알지만 다수의 과학자들에게 이단시 되는 것이다.

 

물론 소인도 있어 키가 15센티미터 정도 였다는데 거인이나 소인은 환경에 적응이 안되어 도태되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의 사람은 中人(중인;세종류의 사람중 중간크기의 사람)인 것이다. 1.5m-2m크기의 키를 가진 인간이 이 지구에 가장 적합하여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거인은 먹이를 엄청먹어야 하고 달리면 잠시만에 육지의 끝에 이르니 지구가 작았던 것이다. 소인은 너무 작아서 새에게 잡혀먹기도 하고 덩치가 너무작아 뭘 제대로 할 수있는게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동물에서 진화했다는 것은 틀린 이론이다. 왜냐하면 동물과 인간은 신은 처음부터 구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들다보니 사람과 비슷한 동물이 생긴것이지 원숭이가 변해 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원숭이가 진화해 사람이 되었다면 원숭이는 없어져야 하는데 지금 원숭이가 그대로 있다면 이건 잘못된 이론임을 바로 알 수 있는 것아닌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없이 자연의 이치는 단순하다. 그럼 멀쩡히 있는 원숭이는 무엇인가. 왜 진화하지 못했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약간의 진화야 있겠지만 완전히 모양이 바뀌는 큰진화는 없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이전에 수생식물이 육지로 올라와 동물이 되고 그것이 변해 인간이 되었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이며 이게 무슨 이론이라 할 가치가 잇는가. 사람들은 새롭거나 자기가 상상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내놓으면 떠들썩하다.

 

 

그러면 지구의 역사가 45억년이란 말은 뭐냐. 그건 지구에 45억년이 된 돌이 있다는 뜻인데 그건 이 지구를 만들 때 지구주변에서 떠돌던 파편,분진등을 섞어 만들었는데 외부에서 따라 들어온 것이다. 그 후에도 지금도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가. 이 운석이 지구의 것인가. 지구상에 있으면 다 지구의 것인가. 이 운석을 가지고 측정하면 또 측정해보니 60억년이 되었다면 이지구의 기원이 60억년인가. 이런 것이 아니다. 신이 지구를 만들 때 원래 지구자리에 있던 땅덩이와 주변의 떠도는 분진을 그냥 두면 지구에 위험하므로 함께 합한 것이다. 그럼 원래 지구자리 있던 땅덩이는 그것의 역사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의 어떤 흙이나 돌도 지구역사보다 훨씬 이전의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구만이 아니고 다른 행성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저보다 더 큰 짐승을 잡아먹기도 한다. 말하자면 몸집이 작은 것도 큰 것을 먹이로 할수있다는 뜻이다. 소나 고래같은 것이 크지만 사람은 이것도 잡아먹는다. 작은 동물이라도 무리를 지으면 저보다 훨씬 큰 짐승을 잡아먹을 수 있다. 그런데 코끼리는 희한하게도 고기가 맛이없어 아무 동물도 잡아먹지 않는다. 커서 잡아먹기도 어렵겠지만 근본 고기 맛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큰짐승을 동물을 잡아먹게 했다면 신이 동물을 만든 이유가 없게된다. 말하자면 신이 이동물을 잘못 만든 것이 된다. 신은 실수가 없다. 그러므로 코끼리와 같이 소와 같이 기린과 같이 몸집이 큰짐승은 반드시 식물을 먹고 살도록 했다. 그러므로 사나운 사자나 호랑이는 고기를 먹는대신 새끼를 많이 낳지 못하게 출산새끼수를 제한한 것이다.

 

 

대만은 인터넷이 집이든 전철이든 도무지 터지지 않는다. 한국은 4G나온지 오래 되었지만 여기는 이제 앞으로 곧 나온다고 선전하고 있다. 인터넷 속도가 엄청느리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이나 돌덩이일지라도 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수석이라 부르는데 에너지가 나쁜 돌을 집에 가져다 두면 나쁜일만 생긴다. 그 돌의 일정에너지 범위안에 있으면 건강이 안좋을 수도 있다. 물론 비싼 희귀한 빛의 다이아몬드 같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런것도 다 에너지가 있고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일반 다이아몬드 보다 에너지가 훨씬 강하다는 말이다. 크기가 크니 당연히 강할 수밖에 없다. 과일이나 채소도 제때를 넘기면 냉장고속에서도 시원하게 해주는데도 고통스러워 진액을 흘린다. 말하자면 빨리 싱싱할 때 먹어치우지 않으면 고들면 괴롭기 때문이다. 사람도 어디 가두어 오래두면 진땀을 흘리고 정신이 돌기도 하지 않는가.

 

 

사람몸의 어느부분도 다 36.5도이다. 다른 부분은 다 36.5도인데 대변만 필요없는 부분이니 10도만 되면 안될까, 그런 것이 아니다. 배가 싸늘하기만 하면 설사해야 한다. 설사를 한다는 것은 먹은 것을 에너지로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채 배출시키는 것인데 이러면 먹지 않은 거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게다가 용변을 본다는 것은 저장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니 에너지 소모만 생기니 안 먹은 것만 못하게 된다.

 

 

대만와서 내 개인적으로 두남자(1,2) 세여자(3,4,5)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또 다른 두여자분과 많은 여성라오스(6,7+20여명) 때문에 기분이 좋다. 1은 여행갔을때의 택시운전사인데 내게 사기를 친 것이다. 내가 어느 관광지를 얼마에 가자했는데 거기를 안가고 다른데 데려다놓고는 여기라며 우겼다. 거기가면 거리는 얼마고 시간은 얼마걸리고 뭣을 보고까지 다 얘기 주고받고 했는데 괘씸하기 짝이 없었따. 승객이 나 혼자라 증명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돈은 하루 택시값을 받아챙기고 멀리가면 기름드니 오리발 내민 것이다. 대만와서 제일 기분나쁜 추억이다.

 

2는 방을 얻어준 분인데 너무 순진하고 마누라에 꽉쥐어 사는 사람이라 불쌍한 사람이다. 자신의 딸을 시집보낼 때 부조한 이후로 등을 돌린 사람이다.

 

3은 두 번째로 이사한 집에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집주인에게 세얻어 다시 남은 방두개중 내게 방하나를 세놓은 40대후반 한국노처녀인데 완전 자기밖에 모르고 사람을 이용해 자기가 편하려는 나쁜 버릇이 있다. 강아지를 돌봐달라고 아마 세놓은 듯 출장가있으며 개사진을 찍어 보내라하는데 내 휴대전화가 문제잇어 사진을 못찍어서 보내고부터 맘이 변한 사람이다. 이사하고 보니 에어콘도 없지요. 냉장고도 없지요. 침대도 없지요. 책상은 내려앉았지요. 이런데도 월세를 꼬박 받아챙기고 도무지 반성하거나 미안한 빛도 없이 인터넷비용, 관리비등을 선불로 받아챙기는 기이한 사람이다. 남의것을 우습게 알고 여러정황을 보아 도무지 아무리 이해해주려해도 인간이하의 사람이다. 너무나 악독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4는 대만사대에서 같은반하던 일인 여성인데 (대만여성과 일본남자의 혼혈) 얼마나 도도한지 한번은 아주 약간 비맞은 우산을 교실에 가지고 들어가 잠시 말리고 접으려는 순간 이여성이 나서 '한국인'하며 노려보는데 정말 일주일간 밥맛이 없었다. 아무도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는데 뭐든 참견하려는 나쁜버릇이 있는데 늘 지각하면서도 말한마디마다 다 대꾸하고 안하무인이다. 입이 얼마나 가벼운지 나는 그녀의 입이 나비날개보다 더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5는 마지막 학기 담당라오스인데 이 역시 50살의 노처녀라 자기밖에 모르고 완전 자기기분대로 사는 사람인데 뭘 물으면 시비조로 반문하니 물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대답하려니 문장만드는게 귀찮으니 나무라기만 하는 라오스老師.

 

6번부터는 내게 엄청난 도움을 준 분들인데 소개하자면 두 번째 학기에 나를 담당햇던 라오스다. 갖 결혼한 여자라오스인데 한국에 대해 아주 동경하는 그런분으로 늘 고맙게 대답해주던 분이다. 담임을 떠나고서도 그뒤로 내가 찾아가 물으면 언제나 기분좋게 대답해주시던 분이다.

 

7은 매주 일요일마다 단체 체조할 때 만난 여성변호사로 아주 고맙게 대해주던 분이다.

 

나머지는 2,30명가까이 되는 대만사대 국어교학중심 소속 여성라오스로 시간을 정해 돌아가며 도서실에서 학생들 질문에 답해주는데 그중 내가 가장 많이 질문한 사람중 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이분들은 도서실에서 수많은 질문을 했는데도 아주 따뜻하게 가르쳐 주고 힘을 북돋아 주던 분들이다. 담당라오스는 별로 수업중 해당되는 문제만 묻지만 여기 라오스는 묻고 싶은 것은 뭣이든 물어도 된다. 마치 가족처럼 그렇게 편하게 대해 주었다. 이런 분이 바로 진정한 교육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를 아주 대견하다며 칭찬한 분도 많다. 사실 열심히 나만큼 한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다 놀러가는데 자리를 지키며 고정적으로 꾸준히 질문하는 학생은 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 이유는 외국어를 마스터 해야 겟다는 그런 절실한 마음가짐이 있었고 또 가정을 팽개치고 공부하는데 그냥 남들처럼 대충해서야 되겟냐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을 팽개치고 까지 먼외국에 왔으면 뭔가 얻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대만사대는 남자라오스는 없고 모두 여자라오스 뿐이다.

 

이처럼 좋은 분이 많은데도 악질35 때문에 너무나 질려서 다시는 대만을 오고 싶지않은 그런 기분이다. 1년의 대만생활중 마지막 두달은 마치 지옥과 같았다. 이제 내일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도서실 라오스들 덕분에 많은 모르는 부분을 시정받아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

 

그러나 중문은 외국어이니 적어도 2년은 현지에서 공부해야 제대로 할 수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대만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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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의 모습. [사진: 전라남도 수산자원과 제공]
 

 

요즘 세월호 참사로 떠들썩하다. 신문이나 방송, 인터넷보도 등이 공정한 보도만 하면 될텐데, 책임도 없이 국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기네의 기사를 많이 보도록 끌어들이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사와 그다지 관계가 없는 선박회사의 전신을 들먹거리고, 영업주를 들먹거리고 있고, 회사운영을 들먹거리고, 오대양사건과 관계가 어떠하다는등, 아무런 사고와 도움이 안되는 기사를 쓰고 있는 곳이 있다.

 

사고에 대해서도 3등항해사가 이 배를 첫 운항 하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하루이틀 조타 지휘한게 아닌데, 자격도 없는 항해사가 조타지휘를 한 것처럼 주관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여러 기사를 참고해 볼 때 항해사라면 되지 3등항해사가 하면 잘못한 것처럼 몰아 부쳐서는 안된다. 현재로서는 사고해역이 선장이 반드시 조타를 꼭 지휘해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또 항해사 경력도 들먹이고 있는데 2년이상 경력이 있는걸로 봐서 베테랑은 아니지만 배를 조타하는데 문제될 만큼의 수준은 아니다. 이런식으로 따진다면 신참은 그럼 늘 뒷짐만 지고 선배항해사가 운항하는걸 지켜봐야 하는가. 그럼 고참항해사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인가.

 

왜 배를 급선회 했느냐가 제일 관건이다. 선장이 승객을 뒤로둔채 빠져나왔다 정도로만 표현하면 될걸 몰래 빠져나온 영상이 잡혔다느니 선장이 병원에서 젖은 돈을 말리고 있다느니 감정만 건드리는 보도만 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또 젊은 여성항해사가 지금 이시점에서는 이런 참사가 난 것이 끔찍하고 두렵고 정신도 없을텐데 운항관련 3명을 구속하느니 선장은 최고 무기징역을 처할수있다느니 왜 흥미위주로 몰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항해사는 이유가 있어서 조타지시를 했을텐데 기자들이 묻는다고 꼭 답해야 할 일도 아니다. 또 우리나라 국위나 교역이나 국익과 이해관계가 있는 기사는 자제해 보도해야한다. 이 나라 국민이면서 또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이나라를 헐뜯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럼 정부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남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느냐도 선행해야 한다. 나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으면서 남만 탓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여객선박업계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어 지금 상태에서는 전혀 앞으로 또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가 없다. 영업은 수지를 따져야 하는데 남는게 없는데 무슨 승객을 위해 투자할 영업주가 있겠는가. 버스나 택시도 국가에서 보조를 하듯이 선박여행이 있어야 한다면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선박사에도 보조하는 걸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도 운행적자를 정부서 엄청난 보조를 하고 있다. 선박여행이 있어야 한다면 여기라고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아예 선박회사를 우리나라에서 깡그리 없애버리면 모를까 존재해야 한다면 존재할 수 있도록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회사에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라고 뭐든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가 침몰했다느니 하는데 좀 냉정히 어휘선택을 해야 한다. 아래에서 보고를 하는 체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정부발표가 혼선이 올 수밖에 없다. 자료가 부실한데 공정한 발표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방금 발표하고 나면 또 다른 자료가 올라오고 하니 오락가락하는데 이건 근본적인 문제이니 정부를 지금시점에서 몰아부칠 일은 아니다. 이 사고 수습후 전면 재검토해야 할 일이다. 지금 당장에 정부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필요하다면 예산이 있어야 하고, 준비할 시간이 있어야 하고, 구체적인 계획수립이 있어야 하기때문이다.

 

정신없이 바쁜사람한테 나무라기만 한다면 능률이 오르겠는가.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 언론도 관심을 가진 국민들에게 무슨 호기심을 끌게하여 자기 기사를 많이 보게하려는 욕심을 부리기 전에 기사가 공정하고 공평하게 객관적 입장에서 국익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정확한 것이 보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섣불리 엉겁결에 확인도 않고 보도하고는 나중 사과발표하는 이런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사고난건 사고난대로 원인을 조속히 규명해야 하고 또 승객구조는 승객구조대로 재빨리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피해자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할것이다.
 

<예기나 좀 할까요!>

자기 남편과 같이 다니는 여성을 보면 타이완남성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남편이 마누라 소변도 대신 봐줄수만 있다면 그렇게 해줄거같이 느껴진다. (이러면 남자가 더 힘들어 지는데잉. 여성은 애만 낳으면 되는데잉 ㅎㅎ.) 남성은 아내를 위해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고 챙겨준다. 게다가 여성이 밥도 안해도 되고 아침부터 줄곧 저녁까지 밖에서 사먹으니 시장갈 일도 없고 화장말고는 애낳는 연습밖에 할게 없지만. 더운 지방에서 화장은 땀 때문에 제대로 하기가 귀찮다. 또 할필요도 없다.

 

그래서 남녀를 막론하고 세수도 안한 것 같은 사람이 자주 눈에 띈다. 예쁘게 보이려면 화장품을 많이 칠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약간은 진해야 하는데. 덥고 비가 자주 내리니 예쁘게 화장할 수도 없다. 날씨가 더우면 혈색이 돌고 피부도 아름답고 얼굴도 더 예쁘게 보인다. 물론 밤에보면 더 예쁘지만. 왜냐하면 밤에는 어두워서 좀 못한 부분이 감추어 지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우면 얼굴도 창백해져 핏기도 없다. 아무래도 불그레한게 보기가 좋다. 그러므로 더운나라 여성들은 예쁘게 보이기 쉽다. 그대신 아마 빨리 늙을 것이다. 생장이 빠르면 갈때도 빨리간다.

 

태국 가보면 알지만 60넘은 사람이 잘 없다고 한다. 살기싫어 죽고 없는게 아니라 더우면 신진대사가 빠르니 80살까지 살사람이 마흔빡게 못사는 것이다. 아마 문화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나이든 사람이 더욱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60년대는 세계서 꼬비담으로 못살고 평균 50살 까지 살았다한다. 1960년대 그때는 못사는게 세계서 꼴찌서 두 번째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은 다 국민을 생각하고 나라에 충성하기 위해 대통령으로 뽑혔겠지만 우리를 이만큼 잘 살도록 해준 이미 가신 그분 대통령께는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더운지방은 불을 피워 밥을 하면 덥고 귀찮으므로 집안에 부엌이 없고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부엌이 있는 집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없는 집이 많다. 또 있는 집도 평소 해먹는게 아니고 어쩌다 특별한 때 사용한다. 밖에 나가 사먹는게 훨씬 싸고 설거지도 안해도 되고 쓰레기도 없으니 다 이 방법을 택한다. 그래서 한국여성이 여기 오면 여왕처럼 군림하는 타이완 여성을 따라 배우기 쉽다. 자칫 한국으로 돌아가서까지 이러다간 쫓겨날 수도 있는데 말이징......ㅋㅋ.

 

날씨가 따뜻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게으르다. 더우니 만사가 귀찮은데 이게 하루이틀이 아니고 사람의 한평생을 지속되니 신체도 작동이 둔하고 느리고 게으를 수밖에 없다. (어린애도 열나면 축늘어지지 않나요. 식물도 더우면 잎이 축늘어지자나요. 컴퓨터도 열나면 잘 다운되자나용? 사람도 마찬가지지라.) 더우면 게다가 음식도 잘 변해 음식해 보관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비가 자주오니 방안이 습해 모든게 잘 변하고 상한다. 드라이버가 스텐처리 안된건 보름되면 녹쓸어 벌겋다. 비 맞아도 되는 복장을 주로하다보니 유행이 있을 수 없다. 멋을 낼수가 없는 것이다. 곱게 챙겨 입어봐야 옷이 비맞고, 곱게 화장해봐야 얼굴도 비맞기 일쑤라 신경써 화장한 예쁜상태로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 우산쓰면 되잔아!할 수 있다. 그래도 습하고 덥잔여.

 

그러면 얼마나 비가 자주오나? 많이 오면 한달내내 비온다고 보면 된다. 일주일동안 한번도 비안오는 경우는 없다. 그러니 음식문화 특히 음료수문화가 발달해있고 더우니 밤에도 잠을 못자고 나돌아 다니니 야시장이 발달해 있다.

 

밖에 나갈때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스쿠터를 타는데 길건널때는 운전에 서툰사람도 많아서 좀 신경써야 한다. 또 교통체계가 여기 저기서 스쿠터가 튀어나올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횡단보도 보행자가 건널때는 모든게 올스톱시켜 안전하게 건너도록 하는데 여긴 건너편 길에서 차량이 좌회전을 같이 하도록 되어있어 건너는데 앞에 차들이 들이닥친다. 또 여성운전자의 여왕스런 운전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남성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운전을 좀 하는 편이다.

 

대만의 가장 불편한 점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이 느리다는 것이다. 다운로드나 업로드 하려면 지치게 만든다. 시간 허비도 많다. 휴대전화도 3G라 아직4G가 먼지도 모르고 속도가 느리고 상태도 안좋다. 휴대폰에 인터넷을 안써도 되도록 와이파이를 쓸수있게 TPE Free, TPE-Free BusWifi가 서비스되지만 안되는 곳이 더많고 특히나 이동중에는 잘 안된다. 따라서 인터넷을 가입해야 한다. 외국인으로서는 무료로 통화할 수 있는 카톡의 보이스톡이나 네이버의 라인을 이용하려면 인터넷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집에 인터넷 별도, 휴대전화인터넷 별도로 해서 두가지를 다 가입해야 한다. 집인터넷은 월500, 제일 크다는 중화전신은 휴대전화는 2개월1기가 180, 따꺼다는 월1기가 180원이다. 대신 중화전신은 번체는 잘 발송되나 한글은 잘 발송이 안될때가 많다. 나는 사범대 등록시 중화전신에서 접수받고 있어 중화전신을 사용한다. 한국인은 따거다가 존점이 많단다. 어느 통신사건 물론 미리 예치해서(보통500원정도) 여기서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때 돈이 빠져나가는데 전화걸때만 문자가 와서 알려준다. 얼마 빠지고 얼마 남았다고. 문자는 돈이 너무 작아 문자를 안보내준다.

 

또 스마트폰 인터넷은 한번신청하면 두달마다 직접 중화전신에 가서 선불로 지불해야 쓸 수 있다. 물론 중문을 잘하면 전화로도 가능하다. 외국인은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라 믿을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집인터넷은 사용하고 나서 후불로 내면 된다. 이건 매달 주인앞으로 나오니 세든 사람이 안내면 주인이 대신 내야하기 때문에 후불이다.

 

지구는 가만히 있는 물건이 아니고 자전도 하고 돌고 공전도 해서 구름층이 어떻게 형성되어 지상에 떠있다가 비가 내린다는 예보를 하기 쉽지않겠지만 여기 기상대도 마찬가지로 비올확률 90%라면 모를까 예보를 믿기가 어렵다. 오늘도 확률이 낮에는 40%라 되어 있는데 점심때부터 오후내내 비가 내리고 있다. 이쯤되면 왠만하면 비올확률을 잘못 예보했으니 고칠법도 한데 그냥 그대로 내비둔다. 밤에는 10%, 낼낮은 0%라 나오는데 6시인데도 아직 비가 추적추적내리고 있다. 밤에 10%라면 오후시간이 밤이 가까워질수록 비가 그치고 날씨가 맑아져야 할텐데 낮이나 저녁이나 똑 같다.

 

그래서 그런지 대만사람들은 정부를 잘 믿지 않는다. 정부에서 하는 방송을 거의 안보고 TV에서 나오는 보도를 믿지 않는다. 다른나라 방송을 많이 본다. 자기 나라 배우나 탤런트를 조아하는게 아니라 한국배우나 탤런트의 팬이고 더 동경하고 입에 오르내린다. 정부를 많이 불신한다. 학교가면 북한빼고 온갖나라에서 온 사람을 다 만나는데 아직 자기나라 정부를 좋다고 말하는걸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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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만에 잠시라도 오시려면

 

1)외국인이 방을 구하기

나는 원래 타오팡이라해서 원룸비슷한 방을 얻어 살다가 방세가 비싸서(실제는 비싼방을 얻은 것) 그래도 좀 더싼 대만돈 월10000(우리돈4십만원)이하의 방을 얻으려하니 1년기한 이내에 나가게 되면 보증금 두 달치를 못받는다 해서 나갈까말까 애태웠는데 어째 주인과 잘 얘기되어 보증금을 다 돌려받고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로 얻은 집은 말만 듣고 한번 방을 보지도 않고 얻게 되었는데 와보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있었다. 첫째로 주인이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 그래서 추운날씨에도 개가 발코니에 나가 오줌을 싸도록 하기위해 발코니 문을 늘 열어둔다는 것, 그래서 좀 춥게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 둘째로 독립된 방이 아니라 대부분의 타오팡에서는 개인 것이 따로 있는데 반해 이곳은 아파트의 방하나를 한사람이 빌려서는 다시 세를 놓아 세탁기, 가스렌지, 화구, 싱크대, 냉장고등을 주인과 옆방에 세든 사람과 같이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같이 쓰니 좋은 점도 있다. 세탁기도 다른 사람이 안쓸때를 택해야 하지만 좀 너른 곳에서 돌릴수 있고, 화장실도 비교적 넓고, 온수도 비교적 잘나오고, 혹 열쇠같은 걸 안갖고 나왔더라도 집에 사람이 사니 문제없는 등의 편리한 점도 있다. 그러나 주인과 맘이 맞지않으면 싱크대 사용시에 일일이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아파트는 대체로 남을 세주지 않지만 여긴 세주는 집이 많은듯하다. 왜냐하면 혼자사는 사람이 한 채를 빌려 혼자쓰면 사실 아깝게 방을 비워두어야 하니 세를 놓아 자신의 빌린 방세를 보충할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 가정을 꾸린 사람은 세를 놓지 않고 대체로 혼자사는 사람이 세를 놓는다는데 있다. 가정집에 세를 들수만 있다면 아주 좋지만 잘 없다. 그래서 혼자사는 사람이 세를 놓는 데 들어가게 되면 혼자사는 사람은 남녀를 막론하고 욕구불만이 많아 우선 서로간 마찰이 발생하기 쉽다. 그래서 집을 고를때는 집도 중요하지만 아파트라면 주인을 잘 만나야 한다. 웹사이트에 보면 싼집이 많이 나와있다. 여긴 한국은 중개소에서 월세 전세 매매까지 다하지만 여긴 주로 매매만 취급하고 월세는 사이트에서 구한다. 참고로 방구할 수 있는 사이트를 링크힌다.

http://www.twhouses.com.tw/

 

2)외국인이 대만여행하기

대만에서도 여행을 많이 오는 유명한 곳이라면 역부근에 택시가 많아 구경하는데 예약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다. 전문 택시투어회사에 2800원을 들여 하루예약해서 택시투어했다고 자랑했더니 같은날 화련여행했다는 班友가 자신들은 택투예약 없이도 그냥 갔는데 역앞에서 택시가 즐비해 어디 가냐고 물어와 타이루거 간다니 원래 2500인데 2400에 해준다며 가자해 갔다고 하니, 우리는 같은 곳을 가면서도 이보다 4백원을 더준 셈이다. 이러하다면 예약이 별의미가 없는듯하다.

 

대만지하철은 地鐵(디티에)이라 하지않고 捷運(지에윈;첩운;민첩한운송이란뜻)이라 하는데 지에윈에 내리면 상당히 괜찮은 무료 地圖를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 일부러 지도를 사지 않아도 된다. 책도 [just go대만]이라는 책을 많이 사보는데 사지말고 자료는 인터넷을 뒤져 알아보고 메모하고, 그래도 궁금한 부분만 여행한 경험자한테 묻는게 훨씬 낫다.

 

3)대만사람들이 좋아하는 색깔은 검은색?

우리나라도 조금은 비슷하지만 대만은 훨씬 더해서 우리는 꿈에서도 생각못하는 내의의 색깔이 검은색이라는 것, 장화도 검은색 겉옷도 대체로 검은색이다. 검은 색은 귀신이 좋아하는 색이라해서 우리나라는 검은 색의 동물을 싫어하고 흰색을 원래 좋아해 백의민족이라 불렸다. 말하자면 사랑이나 善業(남에게 덕을 베풀어 신체주변에 띄는물질)이 흰색이라면 질투나 罪業(남에게 해를 끼치는 죄를 범한후 신체주위에 생긴물질)은 검은색이다. 사람이 죽을 것을 예고하며 울던 부엉이도 밤에만 활동하고 낮에는 밤에 활동하기 위해 잔다. 모든 나쁜 것은 다 검은 색이다. 나쁜 사람을 보고 속이 시커멓다고도 한다.

 

내가 알기로 검은 것으로 쓸만한 것은 동양사람의 검은 머리카락과 오골계와 숯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귀신은 어두울 때 다니지 밝을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개도 누렁개를 선호하고 새도 검은색의 새를 싫어해 우리는 조상때부터 까마귀를 아주 싫어했다. 특히 일본은 도시 복판에도 온통 까마귀가 우글대지만 우리나라는 까치를 손님이 오면 반가이 짖는다고 해서 吉鳥로 쳤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은 原子爐 누출이후 완전 이그러진 상태다. 일본산은 해산물을 비롯하여 전자제품 까지도 꺼리는 사람이 많다한다.

 

그런데 과일을 수확할 때 예전처럼 까치밥이라해서 나무마다 몇 개씩 남기지 않고 요즘은 몽땅 따버려 까치같은 새가 먹을 것이 없으니 다른 과일을 먹어 까치 소탕작전을 벌여 지금은 멸종위기에 이르렀다. 물론 맷돼지나 다람쥐가 먹을 먹이도 사람들이 싹쓸이해서 몽땅챙겨 맷돼지가 민가에 내려와 채소를 헤치고 다람쥐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기에 이르렀다. 예전에 사람들이 까치를 제비처럼 귀하게 여길때는 까치도 때깔이 있어 번지르르 했는데 요즘 어쩌다 보이는 까치는 먹이를 제대로 못먹어 비쩍말라 곧 죽을 것처럼 불쌍하게 보인다.

 

4)대만사람은 차()를 좋아한다.

채소조차도 볶아야 성질이 차는 중국이나 대만사람들은 고기를 즐겨 먹는데 혼자 세끼를 먹을 수 있는 쇠고기가 여기의 마트가면 8,90(3~35백원정도)한다. 그러면 한끼에 대략 우리돈 천원정도 치는 셈인데, 고기가 싸서 그런지 특히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를 많이 먹는다. 기름기를 많이 먹다보니 기름기를 씻어내기 위해 차를 마시게 된다. 대만사람은 거의 일이 없어 놀때는 입에 차를 달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기름기를 수시로 빼내니 다리가 다 날씬하다.

 

5)대만사람은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다.

옷이 짧으면 입기 쉽고 입은 후에도 편하다. 치마를 입으려면 우선 각선미가 받혀줘야 하는데 다들 각선미가 동양사람 치고는 괜찮다. 기후가 더우니 물보다는 차를 많이 마시게되고, 더우니 다리를 내놓고 다니면 편하므로 내놓고 다니다 보니 자연 각선미에 신경을 쓰게 되고, 신경을 쓰면 좋아지가 마련이다. 다들 다리를 내놓고 다니면 혼자 바지를 입기도 뭐하기때문. 먹는 것을 많이 밝히는 사람은 살이 찌기 마련이고, 몸에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은 피부나 머리칼, 체형이 그래도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6)대부분의 대만사람은 중국에서 이민 온 사람이다.

원주민 말고는 대부분이 중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아직도 대륙중국이 좋아하는 붉은색을 선호하고 온갖 신에게 재물이나 취업,취학같은 私的을 많이 빈다. 우리나라도 빌긴 하지만 어쩌다 일년에 한 두번이고 市場마다 재물을 주는 을 모시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있고, 집문마다 벌겋게 재물 부귀를 부르는 부적같은 걸 부쳐놓고 있다. 재물은 선량한 마음으로 참되게 남을 헤치지 않고 얻어야지 남이 가져야 할 것을 어디다 빌어 가로챈다면 그건 좋은 일은 아마 아닐 것이다. 복은 남을 위해 베풀고 남이 잘되기를 바라면 제대로 굴러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을 생각할수록 남도 나를 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을 못되게 바라면 남도 나를 못되게 바랄 것은 당연하다.주는 만큼 받는 것이다.

 

7)중국을 탈피하려 무척 애를 쓴다.

중국/대만 一会儿yi2hui4r /一會兒yi4hui3r 麻烦ma2fan5/ 麻煩ma2fan2

先生xian1sheng5/ 先生xian1sheng1 熊猫xiong2mao1/ 貓熊mao1xiong2  

위와 같이 성조를 달리해 사용하는 것이 상당부분에 이르고 특히 팬더같은 것은 앞뒤로 단어를 맞바꿔(글짜도 잘 보면 다르다) 중국에서 쓰는 것을 피해 사용하기도 한다.  

 

8)짜고 새콤한 맛을 즐기는 민족이다

닭튀김이나 고기튀김종류는 전부 기름에 태워서 색깔이 시커멓고 짜다. 음식 대부분이 짜고 신 것을 즐기는 것같다. 내장요리나 피를 응고시킨 것으로 각종요리를 만들고 간이나 콩팥을 요리한 것도 많아 대부분의 음식이 시커먼 것이 많다. 아니면 전부 기름에 튀긴것들이다.

 

9)모든 요리는 튀겨야 먹는다.

채소까지도 날것은 먹지않고 기름에 튀겨야 먹는다. 같은 동양인데 우리는 생선회부터 육회, 생고기등 날것을 조아하는 편인데 여긴 생것은 먹지 않는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간혹 스시먹는 걸 배운 사람은 간혹 먹기도 한다.

 

10)과일은 우굴쭈굴하거나 흠난 것도 먹는다.

본래모습은 미끈한 과일이지만 안팔려 말라 쭈그러진 것도 가게에서도 팔고 사는사람도 별 마다않고 사먹는다. 우리같으면 과일가게에서 파는 과일이라면 온전한 것을 팔지만 여기는 가게것도 모양이 버려야할 것같은 과일도 판다. 우리나라 과일은 대체로 맛이있거나 중간정도의 맛은 내지만 여긴 맛있는 것은 먹을만하지만 맛없는 것은 형편없이 맛이 못하다.

 

11)여성들 다리가 아주 늘씬하다.

더운 지방이라 늘 다리를 허벅지 한참위에 까지 드러내고 오랜세월 생활하다보니 다리에 신경을 써서 우리처럼 0형다리나 X형다리가 없다. 우리나라는 예전에는 아이를 엄마등뒤에 업다보니 아이의 장단지 부위가 업은 엄마의 갈비뼈를 감싸고 굽은채 굳어져 크다보니 허벅지가 0형다리가 많다. 지금은 그 걸 알고 앞에서 안는 형상의 신형업개가 나와 다리도 굽을 일이 없지만 예전엔 그랫다. 동양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김치를 먹고, 된장찌개를 먹고, 절을 하고, 아이를 등에 업고 키운 관습이 있다. 몽고 엄마들은 왜그런지 모르지만 어린애들을 전부 어릴 때 허벅지를 잠잘 때 묶어서 재워 다리가 아주 쭉쭉 곧다.

 

12)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다

우리는 비가 많이 올때도 3,4일 오다가는 그치지만, 여긴 한번 내리면 아주 한달내내 내리기도 한다. 일기예보가 도무지 맞지를 않다. 비올확률10%인데 소나기가 내리는가 하면 비올확률이 40%인데 아침부터 햇볕이 쨍쨍 내리쬐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비올확률 30%면 무조건 우산을 가져가고 그 이하면 가져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긴 도로를 걸어도 비를 맞지않고 걸을 수 있다. 말하자면 개인건물 1층 앞부분을 건물을 지을 때 아예 통로를 내게해서 건축허가를 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긴 통로의 건물발코니 아래로 걸어다니는 길을 건물의 발코니란 뜻의 치로우[騎樓]라 한다. 그러나 학교나 아파트같은 길쪽에 담장만 있는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널때는 지붕이 없으므로 비를 맞게된다. 아뭏든 거의 비를 안맞고 시내를 다닐수 있다.

 

13)영어로 된 일상용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이 부분을 보면 한글의 우수성이 입증되는데 일본처럼 받침이 거의 없는 글짜는 발음을 할줄 모르는 말이 많다. 예를 들면 일본사람은 [빌딩]이라 말하지 못하고 [비루딩구]라 말할줄 밖에 모른다. 그러다보니 영어로는 []한번 []한번 두번 발음인데 이건 넉자발음이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실어 다시 만든 글자가 뒷글자를 없애버리고 [비루]라 한다.

말하자면 [텔레비전]을 발음못하고 뒷글자 한자를 떼어버리고 [데레비]라 한다. 우리도 어떤 사람은 일본말을 따라 [데레비]라 하는 사람이 있다. 영어에서 나온 글자인 [타월]같은 것이나 우리말의 [절대로][][각자][][][][][]같은 발음은 하지 못한다. 혀가 이런 발음을 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만도 중문으로도 [타월]을 쓰지 못한다. 그래서 아예 타월이라는 단어가 없고 마오진毛巾이라는 자기나라말이 별도로 있고 [호텔][따판디엔]또는 [따쥬디엔]이라는 자기말이 있다.

다만 외국 나라이름은 어쩔수없이 오스트렐리아는 아오다리아[澳大利亞], 오스트리아는 아오디리[奧地利], 유럽은 오우조우[歐洲], 캐나다는 쟈나다[加拿大], 이태리는 이따리[義大利], 맥시코는 모시거[墨西哥], 스페인은 시반야[西班牙]등 실제 영어음과 많이 다르다. 한글은 영어를 상당히 가깝게 표시할수 있기 때문에 한국사람은 타월이라해도 알아듣고 수건이라 해도 알아듣지만 여기는 타월이라하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아는 사람말고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또 [까루프]마트를 쟈러푸[家樂福]라 표기하므로 [까루푸]라 하면 알아들을만 한데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공항터미널]도 [공항]을 지창[機場]이라 하고 [터미널]을 항잔[航站]이라 하므로 [터미널]을 어디로 가느냐 물으면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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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훼이탕(옥황상제모친모신 절

 

산비탈보도로 가는 입구

 

 

 

 

청개구리바위

 

 

 

화련치싱탄해변

송원별관

 

타이루거협곡

 

 

 

 

 

 

 

 

 

 

 

 

 

 

 

 

 

 

 

 

 

 

 

 

 

 

 

 

 

 

 

 

 

 

 

 

 

그래도 한국이 제일낫다

대만에 7개월째 살아보니 한국이 그래도 한국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환경이란게 하루 이틀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고 몇천년의 역사를 거쳐서 형성된 것이니만큼 태어나 사는 곳보다 더 좋은 여건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먹을 것, 입을 것, 살 것, 사는 집의 구조와 환경, 주변여건, 교통환경, 지리적여건등 모든 것이 우리식인 것이다.

 

대만에는 교통이 느끼기에는 엉망인 부분이 있다. 차가 출발하거나 서거나 하는 환경이 굉장히 어지럽게 되어있다. 한국인이 처음 와 보면 뭐 이렇게 교통이 무질서하냐고 느낄 것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이쪽 저쪽에서 차가 들이닥치지를 않나 횡단보도가 행인이 안전하게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임시통로일 뿐이고 잠시 사람이 건너고 나면 차가 다니는 길이 된다. 우리나라는 행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면 모든 차가 다 멈춰서 있어 안전하게 건널수 있지만 여기는 차는 차대로 사람사이를 지나가고 사람은 차량사이를 지나가야 하므로 눈치를 봐야 한다.

 

교통상황이 이러하다보니 우선 안전하게 내가 알아서 건너는 수밖에 없으니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게 생활전반에 연결되어 대만인은 앞뒤가 꽉막힌 사람 같다. 전화를 걸어도 못받으면 당연히 죄?를 뉘우치고 전화를 걸어주는게 당연하건만 처음 걸었을 때 상대가 안받으면 걸었던 사람이 다시 걸어야 한다. 우회전도 차가 신호를 받아야 한다. 무슨 물건을 사더라도 우리나라 같으면 말없으면 그냥 아라서 주는데 여긴 꼬박꼬박 단계마다 물어댄다. 참 답답한 사람들같다. 인터넷 속도도 너무 느려터져서 사이트가 빨리뜨지도 않고 문자를 보내도 빨리 가지 않는다. 물론 다운로드 받다가는 열받아 죽는다.

 

수시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옷을 입어도 멋있게 입을 형편이 안되니 유행이란게 있을수도 없는 환경에다가, 평시 장화를 신고다니는 아가씨도 많다. 장화를 신고 무슨 유행을 말할 것인가. 우산은 늘 가지고 다녀야 하고, 특히 사진 찍기는 아주 신경예민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꽃같은 것은 가까이서 찍어야 한는데 늘 바람에 움직이고 있으니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이런 영향을 받아서인지 한국서 여행을 오거나, 어학을 배우러 온 사람도 다른 외국에서라면 같은 동족을 만나면 반가우련만 그다지 반가운 기색도 없다. 그러고보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영어를 먼저 배우지 중국어를 먼저 배우지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중문보다는 영문이 써먹기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며칠전 여행가려고 택투조인(taxi tour join)을 해서 처음 만난 한국사람과 하루를 여행같이 했는데 무슨 완전 남같이 그다지 말도 않고 각자 행동하니 너무 인정나미가 없는 듯 느껴졌다.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나고 서로가 도움이 되었으면 좀 아는체는 해야할텐데도 만났을 때 반짝 인사 한번하고는 헤어질 때 인사한번이 끝이니 동물들도 이러지는 않을 거 같다.

 

자기가 사는 고장에 가면 아는 사람이 있고 서로 반갑고, 또 내가 찾는 물건이 있어 언제든 살 수 있고,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사는 곳을 떠나면 완전 달라진다. 더욱이 외국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상점을 하는 가게가 한국인만 오기를 눈빠지게 기다릴 수도 없고 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그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하다보니 그나라 사람에 입맛에 맛게 음식이 개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들깻잎이 쌈을 싸먹으면 그리 맛있는데도 대만에는 없고, 깻잎이 있다해도 먹지도 않는다. 파도 우리는 뿌리부터 끝까지 다 먹지만 여긴 뿌리에서 위쪽 반까지만 먹고 끝쪽반은 먹지 않는다.

 

여기는 동물 한마리를 잡으면 발톱과 털(먹지는 않지만 털옷을 만들어 입는다), 내장에 든 똥말고는 피, , 쓸개, 콩팥, , 밥통, 소장, 대장, 껍질까지도 다 먹는데, 먹지않고 버리는 부분이 없고, 이걸로 만두도 만들고 떡도 만들어 먹는다. 오래전에는 떠도는 말에 중국에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와 걸상말고는 다 요리해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대만여기는 바퀴벌레를 먹지는 않는 것 같은데 중국대륙에는 이것도 요리해먹고, 동남아에는 코브라나 뱀, 쥐도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굽거나 뽁거나 삶거나 해서 먹기도 하니 문화인류가 다르니 우리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다.

 

오래전에 프랑스 모 여배우가 한국인은 개를 잡아먹는 국민이라며 못먹게 시위를 벌인 적도 있었다는데 그 나라 사정을 제대로 모르고는 말할 수 없는 일들이다. 특히 프랑스나 영국등 유럽쪽은 왕래가 적어서 우리나라가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전에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도 않았다. 요즘와서 한국인이 부쩍 유럽여행을 많이 하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도 모르는 외국인이 많았다.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가 가장 못사는 아프리카보다도 더 못살았으니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건지 모른다. 아프리카는 지금이나 그때나 발전없이 그대로 멈춰있지만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은 그래도 잘사니 다른나라도 인정을 해준다. 그때는 우리나라는 인력도 수출했지만 쥐털과 오줌까지 수출했다고 한다. 사람은 어쨌든 체면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은 있어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 먹을게 없거나, 쓸돈이 없으면 구차해질 수 밖에 없다.

 

택투해서 간곳이 중동부에 위치한 화련이라는 곳인데 타이루거 협곡이란 곳에 갔다. 협곡이란 높은 산과 높은 산사이에 좁은 골짜기에 강이 흐르는 지형을 말하는데 이런 곳은 산이 가파르고 그사이로 계곡물이 흘러 경치가 수려하다. 육지와 육지사이에 생긴 바다는 해협이라고 한다. 이번 여행하며 느낀건데 이틀중 하루는 택투하고 하루는 혼자 택시를 타고 가고 싶은 곳을 갔다. 그러다보니 1;1이라 무슨일이 있어도 증거를 댈수가 없는데 나도 이런일을 당했다. 대만은 지금은 몇십년전이나 비슷하게 제멋에 겨워 발전도 없이 제자리 걸음을 하지만 7,8십년대만 해도 대만을 모르는 외국인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대만인을 상당히 신뢰를 하고 살았는데 갈수록 여긴 아니다싶은 생각이 들때가 많아진다. 운전사와 분명히 택시로 어디까지 얼마에 가기로 했건만 엉뚱한 장소에 데려다놓고는 여기라고 우기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여러분도 혼자 여행은 삼가하는게 좋겠다. 한쪽이 변심하여 뒤집어 말하면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싸움을 해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슨 사고가 나도 나를 변호하거나 도와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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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생활하기10 낙서장 2014. 1. 26. 23:50

 

 

 

 

 

 

 

 

 

 

 

 

 

 

 

 

 

 

 

토요일은 타이뻬이북부의 양명산을 갔는데 타이베이 처잔에서 버스로 종점에 내려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칠성산입구에 내렸다. 바로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올라가니 산중턱에 유황을 뿜으며 굉음을 내고 있는 산자락이 보였는데 가까운 곳에도 온천수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냄새가 좀 변냄새처럼 좀 고약하고 구멍이 크고 유황을 세게 뿜어대는 건너편 산자락에서는 공룡이 울부짖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나왔다.

 

이게 큰 것이 바로 지진이 되는게 아닌가 싶다. 내려와 양명산의 칠성산이 주봉인 듯 걸어서 비탈길을 오르니 바로 유황연기를 뿜던 그 산자락 뒤편으로 돌아가는데 날씨가 좀 쌀쌀해서 그런지 휴일인데도 행락객이 거의 없다. 주봉을 바라보니 저기까지 어째 올라갈까 싶어 망설여졌지만 잠시만에 오를수있었다. 다시 왔던길로 가는것보다 진행방향으로 가는게 나을거 같아 그곳에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느냐 물으니 왔던길보다 좀 멀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가다묻다하다 이산의 동봉에 올라보고 계속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걸리지 않고 쉽게 주차장에 도달했다. 하여간 물으면 따라오면서 안내해주는데 한국인에 대해 상당한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듯했다.

 

왜냐하면 며칠후 4개월이 지나면 신청할 수 있는 거류증을 만들러 갔을때도 이민소 공무원은 일보던 공무원 좌우에 앉아있는 사람까지 나서서 한국에 관심을 보였다. 안녕히 가세요를 한국말로 어떻게 하느냐는등 공무원이 이런걸 묻는 일은 거의 못봤기 때문이다.

 

산넘어 버스승강장엔 대형 주차장안에 승강장이 있는데 여기서도 첨대린 정류장처럼 타이뻬이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었는데 미니버스라 덜커덕거리고 커브길을 돌때마다 휩쓸리고 하여 좀 힘들었지만 제윈잔(지하철역;대만은 지하철이라는 말을 안쓴다)까지 올 수 있어 좋았다. 8시에 집에서 나가 오후 3시경 돌아오기로 했는데 너무 빨리와 1시경에 타이뻬이에 내려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니 두시도 되지않았다.

 

며칠후에는 앞서 말한 거류증을 만들기 위한 절차로 신체검사를 받아(혈액검사와 엑스레이만 찍고 끝: 그러나 좀 후진국에 속하는 나라는 소변,대변검사등 많은 검사를 해야한다) 외교부에 신청하는데 지난달에 신베이시로 이사한 바람에 엄청멀리 있는 신베이시 이민소로 가야했다. 외교부에서 여권(거류증을 만드는 비자가 있다)을 받아 이민소로 가려면 1시간반이 걸리므로 학교수업을 마치고 제윈을 타고 세 번째역에 내려 다시 버스를 2,30분타고 가 내려서는 걸어서 15분쯤 비탈길을 올라야 한다. 외국인은 주소가 관공서에 기록이 없는 상태이므로 미리준비해간 방계약서를 복사해주고 신청이 끝났다. 이민소나 외교부는 다 사진이 필요한데 여권크기의 사진이다. 나는 사진을 많이 준비해 갔지만 첨비자받을 때 말고도 두 번이나 비자연장을 하고 또 외교부와 이민소에 사진이 필요하니 모자랄거같아 외교부 무인촬영기로 사진을 찍었는데 120원에 6장이 나온다.가지고 간 사진은 약간 푸른빛이 돌아 안된다해서 무인촬영한 사진을 제출했다. 한국의 사진관에서 사진기로 찍은 거 보다 훨씬 깨끗하고 선명했다.

 

그리고 다음 토요일은 사는집 한국인주인과 국립대만대(한국의 서울대에 해당)에 꽃구경하러가자해 갔더니 벚꽃도 피고 많은 꽃이 피어있었다. 대만은 겨울이 없다는 것이다. 온도가 10도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으니 10도만 되면 춥다고 덕지덕지 끼워입는다. 물론 대만에서만 산 사람들은 눈도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사과만한 대만 대추

대만대 구내 대만최고 명물 아이스크림인 샌드위치아이스크림(산밍즈빙치린)

 

대만대 연못에 사는 새들 거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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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생활9 낙서장 2014. 1. 12. 00:54

 

 

 

 

 

 

 

 

 

 

 

 

 

 

 

 

아픈사람 병을 자랑하면 병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찾아지듯이 도서관에서 첨만난 한국여同學(같이 어학을 배우는 사람)에게 방세가 너무 비싼집에 살고 친구가 없고 혼자라 어디 다니지도 못하고 늘 집에만 있어 바깥구경을 거의 못한다고 했더니 동학이 자기사는 집주인에게 말해 이틀만에 집을 옮기게 되었다.
 

 

물론 옮길 것을 감안해 미리 다른 싼집을 물색해놓고 있었지만 아마 한 달후라야 이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사는 집주인이 자기가 세놓아야할 방이 있고 또 말솜씨가 좋아서 내가 전에 살던 집주인에게 나 대신 의사를 잘 전달하여 (내가 방 보증금을 두달치를 기한전에 나가게 되면 원래는 보증금을 못받는다는 데) 이틀만에 나오면서 주인이 세놓을 시간도 주지않고 말하자마자 바로 나오면서도 보증금도 다 돌려받고 새로 이사하는 집은 지금보다 월65백원(韓貨26만원)이 싸다. 나는 다니는 사대부근에 있는 집을 미리 물색해 놓았지만 이사를 바로 하도록 배려해주는 사람한테 나하고 싶은대로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어서 지금의 집주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물론 이사할 때도 동학이 나를 도와 짐을 옮겨주었다. 나혼자 스스로 방을 구하면 나혼자 짐을 다 옮겨야 한다.

 

집주인에게 나를 소개해준 동학학생은 한국서 가까운 지역에 살고 같은 대만사대 어학同學에다 한국에서 비슷한 시기에 대만에 와서 나와 똑같은 학기에 시작해서 배우는 것도 비슷하다. 또 한집에 사니 밖에 나가 같이 다닐 수 있으니 좋다. 나는 타이디엔따로우(한국의 한국전력)부근 9평 타오팡(온전한 원룸)에 살다가 3평짜리 단간방에 사니 좀 비좁기는 하지만 거의 반값의 방세라 만족해야 한다. 절약을 위해 싼집은 좋다. 왜냐하면 돈버는 직장이 있으면서 세를 얻어살면 좀 비싸도 되겠지만 그냥 놀면서 공부하는 형편에 비싼집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 이사온 후 20일만에 다시 원래 옮기려던 대로 좀 큰방으로 옮기게 되었는데(임시로 작은 방에 살게 된 것은 동학이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오므로 내가 사는 3평방으로 옮기면 같이 지낼수 없었기 때문에 더 살게 된 것,그리고 한국서 온 친구가 돌아간후 3평방으로 서로 맞바꾸어 살게 된것) 처음 살던 집보다는 그래도 월3천원이 싸다. 좁은방은 자는 자리가 키만큼 밖에 길이가 안돼 약간 불편했지만 새로 옮긴방(동학과 서로 맞바꾸었다)은 아마 6평은 될듯하다. 말하자면 월세는 첨 살던 집이 만약 140원이라면 3평짜리 옮긴방은 75원이고 다시 옮긴 좀 큰방은 110원인 셈이다.

 

그래서 처음주말은 집주인과 同學과 셋이서 차를 렌트해서 같이 우라이(烏來)라는 온천관광지로 유명한 곳을 갔는데 폭포공원이라는 곳에 케이블카를 타고 가니 산위에 연못과 호텔이 있는데 경치가 좋았다. 폭포는 강옆에 엄청난 물줄기를 내려쏟는데 날씨가 비가내리고 날도 어두워져 사진찍기가 안좋았다. 저녁을 먹고는 온천탕을 갔다. 1실에 1인 또는 2인이 사용하는데 100(우리돈 4천원정도, 이것은 401로 계산한 것이고 지금은 351로 우리나라 돈이 가치가 좀 있게 변했다)이다.

 

일행은 2인실로 먼저 들어가고 반시간을 기다려 차례가 되어 혼자 남아 어떻게 하나 불안하게 고민했는데 1인실에 들어가라고 알려와 물생수 한병과 얇은 타월1장을 주어 들어가는 곳곳에서 안내를 하는 사람이 있어 쉽게 들어가긴 했지만 바닥이 흘린물 때문에 옷벗는 것이 쉽지않았다. 말이 온천이지 물만 냉온수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고 콘크리트 욕조가 있는 것에 불과했다. 특히 타월이 너무 얇아서 몸도 제대로 닦지도 못하고 게다가 양말이 젖거나 하면 신기불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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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주말부터는 동학의 친구가 한국에서 일주일간 놀러와서 나도 같이 따라 나선 셈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일요일은 같이 놀고 평일은 오전은 한국친구혼자 시내구경을 하다 오후에 만나 같이 다녔다. 전보다 새학기 선생님은 숙제도 좀 적게 느껴지고 또 나도 어느정도 세월이 흘러 적응되어 시간적으로 지금은 약간의 여유가 있다. 그러나 휴일마다 놀러다니는 바람에 블로그 글쓸 시간이 없었고 학습진도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도무지 선생님 물음에 답변을 할 수가 없어 곤혹을 치렀다. 왜냐하면 매일 적어도 4시간이상 보통 6시간은 예습과 복습을 해야하는데 교재를 읽지도 않고 갔으니 물으면 무슨 내용이 있는지 알아야 답변을 할수있기 때문이다.

    

첨살던 집에서는 매일 세끼를 집에서 먹을때가 많았지만 학기가 바뀌면서 오후반에서 오전반으로 옮기는 바람에 대만 언어교환학생과도 만날 수 없게 되었다. 집을 새로 옮기고 나서는 거의 한끼 저녁식사만 집에서 해먹고 있다. 같이 행동하다보니 아침은 주로 나가면서 집근방의 햄벅을 사먹고 (50:우리돈 2천원으로 아침끼니해결) 점심은 학교부근에서 100원전후의 식사를 하고 저녁은 집에와 반은 해먹고 반은 사먹는다. 사먹어도 비싼 것은 못먹고 100원전후이다. 대만은 공식저으로 뉴타이완달러라고 표현하지만 거래는 전부 콰이치엔을 쓴다. 원은 문장에서만 사용할 뿐 실생활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휴대폰으로 인터넷하는 것은 생각도 못하다가 이제 어느정도 생활이 익숙해져 알고보니 두달에 180(한화7천원)1GB를 사용할 수 있는걸 신청해서 쓴다. 물론 사는 집에도 WIFI(내전용 와이파이이고 노트북과 휴대전화 모두를 사용하고 한달에 5백원을 낸다) 돼서 집에서는 와이파이, 집을 나서면 중화전신 데이터로 바꿔쓴다. 그러므로 학교 WIFI는 석달만 쓰고 12월말에 그만 두었지만 어디가도 인터넷이 되니 좋다.

 

물론 첨엔 말이 안통해 한달에 900원하는 휴대전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중화전신 직원이 말했다. 그러나 1기가를 쓰는데는 싸게 가입할 수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1기가 신청을 한후 여기전화는 선불이므로 신청과 동시에 180원이 빠져나가고 지금부터 인터넷이 된다고 문자가 온다. 그러나 문자와 전화모두 돈이 빠져나가므로 5백원이하의 잔고가 있으면 불안해서 중화전신에(물론 이걸 많이 쓰고 따거따도 많이 쓴다) 충전하러 중화전신 가니 여기서는 충전안되고 지하철로 가란다. 그런데 다른직원에게 말해 충전을 했는데 이렇게 하는걸 뭐라고 말하냐 물으니 충전은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으로 알아듣기 쉽고 加値라고 하면 알아듣는다고 했다. 말하자면 잔액가치를 증가시킨다는 뜻이다. 한국사람들은 대만인이 융통성이 없다고 더러 말한다. 며칠전 와이파이 배선 때문에 왔던 전신직원이 선을 고정시키는 공구하나도 안 갖고 맨손으로 작업을 하러와 좀 실망했따.

 

집주인을 동학이 언니라 부르니 나도 언니라 칭한다. 나는 대만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좀 바가지 쒸운다고 느끼는데 언니는 그럴 일 없다고 잘라 말한다. 나는 지금에야 보니 중화전신은 180원으로(물론1기가 이지만) 두달을 인터넷을 사용할 수있는데도 중화전신직원은 하루에 100원 하는 무한기가 휴대전화인터넷을 쓰게하여 나는 하루쓰고 100원을 주었던 일과 문이 잠겨 열쇠따게 직원이 처음6백원이라더니 외국인인걸 알고 말을바꿔 9백원을 달라고 한것과 손목시계 배터리를 한국서는 문구점에서는 우리돈1,2백원하면 사고 보석시계점가면 우리돈1500원이나 2천원받는데 여기 시계점은 외국인이라는 걸 알고 100(우리돈4천원)을 달라고 해서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말하니 대만은 돈 가지고 바가지 씌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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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맘먹고 처음으로 타이뻬이 동물원(台北市立動物園)에 갔는데 우리집에서 13번째 역으로 가까운 편이지만 세 번을 갈아타야 한다. 집앞의 역에서 타서 두 번째역에 내려서 다시 환승하려 첫 번째역에 내려서 다시 환승해서 두 번째 역에 내려서 다시환승해서 8번째 역이 종착역인 동물원역이다. 버스와 전철은 학생카드로 할인해서 80%를 내지만 공공장소입장은 첨이라 대인 60, 어린이, 학생은 30원이라 쓰여있어 대뜸 학생증과 50원을 밀어 넣으니 티켓과 20,학생증을 돌려준다. 다시 입구로가서 입장하려니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듯 증명서를 보자해 학생증 보여주니 입장시켰다.

 

 

동물원은 시외곽 동남쪽 변두리에 있는데 대부분이 인공의 돌을 사용하여 만든 것이엇다. 완전한 플라스틱은 아니고 상당히 돌의 질감에 가깝도록 만들었다. 나는 신기한 모양의 것이 많으면 귀한 것을 이렇게나 많이 어떻게 가져다 놓았을까 싶어 진짜인지 두들겨 보는 습관이 있는데 손가락으로 튕기니 덩덩 소리가 났다. 그렇다면 가짜인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바위위에 풀도 자라고 질감도 비슷해 그냥 보면 돌인 줄 알기쉽다. 그러나 모양을 너무 사람입맛에 맛게 다듬어서 자연적인 맛이 덜했다. 어째 저런 모양의 돌이 다 있을까 싶으면 인공이라 보면된다.

 

 

어디를 가나 놀기좋은 곳은 정해져 있고 노는 시기도 정해져 있어 노는 계절은 봄, 여름철이 제일 좋다. 놀로나온 사람이 많으니 우선 좋다. 구경도 구경이지만 사람들의 얼굴, 동작이나 군중을 보는 것도 상당한 즐거움이 있다. 봄에는 많은 사람이 놀러가기를 즐기고 여름은 휴가가 있어 다 놀러나가니 사람도 제일 많이 붐빌 때다. 노는 곳이 아무리 이름난 곳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재미가 없다. 같이 어울려 사람 구경하는 그 재미가 크다. 오늘은 평일인 금요일인데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사람들은 거의 한국에서는 한겨울에나 입는 두꺼운 옷을 입었다. 대만사람들은 대만에서 자기 콧구멍에 들락거리는 서늘한 공기를 가지고 겨울을 가늠할 것이다. ! 겨울은 이런 것이 구나 정도로 겨울을 인식할 것이다. 겨울이라봐야 영하로 내려가지도 않는 겨울이니 겨울같지도 않고 또 눈도 내리지 않으니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눈이 어떻게 생긴줄 아느냐 물으면 아마 눈이 빙설과 비슷할거라는 정도 밖에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동물원이라 면적이 상당히 넓은데 한바퀴 돌며 본 것은 호랑이 한마리와 코끼리한마리, 펜더한마리, 표범한마리, 곰몇마리, 물소, 산양, 하마, 원숭이등이고 사자와 기린은 보지 못했다. 오늘은 날씨가 최저 10, 최고온도는 20도인데 놀러 나올 때는 대개 점심시간 전후이므로 20도정도 날씨라 보면 되겠다. 동물이야 늘 입는 털그대로 4계절을 지나니 먹이구하는 것 외에는 겨울이 뭐 그리 특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동물원에 들어가니 우리에 갇힌 동물이 불쌍해 보여 사진찍기가 미안해서 대체로 식물위주로 찍었다. 도망가기 쉬운 동물은 지붕위에 철망을 친다던가 완전히 사람입장에서 구경하기 쉽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못하는 짐승들은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새는 날아보지도 못하고 짐승들은 달려보지도 못하고 좁은 공간에서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니 뭐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콘크리트가 대부분인 바닥에서 맥없이 돌아다니거나 아예 엎드려 꼼짝않고 엎드려 지낸다. 운동안해도 동물원에 소속된 수의사가 알아서 주사를 주니 큰 걱정 안해도 될 것이다. 여태 폰카로 찍다가 오늘은 디카로 찍었는데 사진이 폰카보다는 그래도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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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뻬이온지 벌써 3개월이 훌쩍 지나갔다. 아직 말한마디 제대로 자신있게 못하는데. 오늘도 까르푸에 갔다가 495원이란걸 795원으로 듣고 돈을 뒤적이니 도로 200원을 돌려주며 다시 말한다. 495원이라고. 그런데 열 몇번이나 까르푸에 가서 그렇게 찾아도 보이지 않던 된장과 쌈장이 오늘은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된장과 쌈장을 사고 또 한국산 통에든 김치가 싱싱하게 보여 중간크기통에 든 김치도 한통 샀다. 한국김치는 아무래도 운송비가 있어 비싸니 한국사람이 사먹어 줘야 할 것 아닌가.

 

 

외국에서 온 교환학생은 거의 3개월과정 마치고는 다 자기나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마지막수업이라 선생님이 마련했는지 (공자묘갔을때도 선생님이 저녁을 샀음)과자를 사다 놓았는데 누가 산 것도 모르고 그냥 먹기만 했다. 3개월간 같이 공부했으면서도 또 기약없이 헤어지면서도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그냥 손만 흔들고 끝이다. 서양애들끼리는 약속을 잡아 술을 좋아하는 일본애한테는 말이 잘 안 통해 그런지 얘기도 안하고 저희끼리 맥주한잔 하러가는데 일본애는 반친구와도 악수한번 않고 마치자마자 바로 미리 가버리고 서양애들은 한잔하러 가는데 나보고는 못먹는 걸 아니 의사를 묻는데 나는 술을 먹지않으므로 가서 멍하니 앉아말도 잘 안 통하는데(프랑스애와는 말이 좀 통해 얘기를 자주하는 편) 있기 뭐해 그냥 헤어진 것이다.

 

내일부터 방학인데 방학이라해봐야 5일이지만 그중하루는 학교에 시간표라던가 교실배정 때문에 나가야 하니 4일밖에 안된다. 그런데 사대본과 학생들은 이것 마저도 없이 쉬지않고 빡빡한 수업을 한다. 사대여학생을 한주에 한번 만나는데 집이 가오숑에 있다고 한다. 바깥에 파라솔아래 앉아 얘기하면 이제는 추워 전번금요일 만나서는 건물안에 벤취에서 얘기했다.

한달전에 건의 할 것 있으면 하라해 내가 오리엔테이션이 너무 일찍해서 비자연장에 문제있다고 했더니 이번학기는 오리엔테이션 다음날부터 바로 수업이다. 내가 건의 한게 받아들여져 그런건지 모르겠다.

 

이것 말고도 상당분량 사대에서 고칠점을 적었는데 이미 학기 계획이 다 짜였으니 지금 제출이해도 반영이 안될거고 학기 끝날때쯤 제출하려한다. 내용중에는 문제를 왜 영어로 묻느냐 중문으로 물으면 안되는냐 등이 포함되어있다. 지금 대로라면 영어모르면 과정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학력도 제한이 없으면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기란 어렵고 또 대학까지 나와봐야 영어구사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며칠전에는 스린역부근에 역사가 깊은 곽원익과자박물관에 가서 과자만들기 체험도 했다. 정부에서도 적극권장하는 그런 과자점인데 대만은 빵은 크기가 너무크고 또 수분이 너무 적어 바삭바삭해서 한국사람이 먹기는 좀 목이 막힌다. 대만사람들은 이런걸 먹는데 익숙해서 차를 마신다던가 해서 중화를 시키지만 우리나라사람들은 차도 그리 마시는 편이 못되서 너무 바짝마른 음식은 익숙지 못하다.

또 음식들이 대체로 짠편인데 땅콩볶은 걸 좀 심심할 때 먹으려고 샀더니 소금을 얼마나 넣었는지 물을 마시면서 먹어야 한다. 또 수프도 한국것은 그냥 밥대신 먹을수 있는데 여기수프는 밥위에 얹어서 먹는 거라 간이 많이 들어있다. 화장지도 오늘 살까 했는데 두루마리 화장지는 까르푸에서 찾지 못하고 전부 접는 화장지만 있어 그냥 돌아왔다. 까르푸말고 다른 마트 가면 있기는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화장지라면 두장이면 왠만하면 쓸수있는데 이건 너무 엉성해서 5,6장을 겹쳐서 써야 하니 헤프다.

 

여기는 아직 코스모스가 피어있고 꽃들이 많이 피어있다. 여름인지 가을인지 분간이 안 간다. 기후변화가 심해서 하루새 최고온도와 최저온도차이가 각각 6도씩이나 된다. 대만은 나갈때마다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데 일기예보를 보면 항상 비올확률이 30%인데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야 어쩌다 비가오고 또 이내 그치니 문제가 없지만 나갈때마다 우산을 챙기려니 거추장스럽다. 게다가 우산을 써봐야 필요없을 때가 많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때가 많아 우산을 그냥 쓰고있다가는 부러져 새우산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진도 맘대로 찍을수가 없다. 바람이 불 때 사진찍기가 제일 어렵다. 고정된 물체야 그리 문제 될게 없지만(삼각대없으면 바람이 불면 아무래도 떨린 사진을 찍기쉽다) 움직이는 물체는 고정되어있지 않으니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마트가면 20kg들이가 대부분이고 어쩌다 10kg들이가 있는데 여기는 2~4kg이 대부분이다. 밥을 밖에서 해결하니 그런모양인데 내가 사는집도 부엌이 없지만 부엌이 없이 집에서는 간단히 먹는 모양이다. 거리에 나가면 보도에는 주로 스쿠터가 다니고 건물1층앞부분을 보도로 내어 사람이 통행하도록 한다. 자기땅일부를 정부에 내놓아 다니는 길로 사용하는데 이럴 경우 편리한 점은 비가 와도 거리를 나가도 비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사잘 되는 살가를 찍은 것인데 보통 장사하는 중에는 2,30명은 언제나 줄서있는 대기해있는 가게인데 우유로 만든 마실 것 종류를 파는 원조가게이다.

 

날씨가 영하까지 내려가지도 않아 아예 난방자체가 없으니 그래도 방안 공기가 차니 슬리핑백이나 전기요같은 걸 사려했더니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내고 아주 따뜻한 가벼운 담요같은 것을 하나 샀는데 자보니 아주 따뜻하다. 이불도 비싼것도 많고 자체 발열되니 하면서 엄청 비싼값을 매겼지만 사실 그만큼 비싼만큼 효과도 없다. 찾아보면 싸고도 따뜻하게 지낼수있는게 많다. 비싸다고 다 좋다고는 할 수 없다. 돈있는 사람을 겨냥해 턱없는 가격을 매긴 것도 많기 때문이다. 돈있는 사람이야 일단 비싼 것을 찾으니까.

 

며칠을 놀지만 같이 놀아줄 사람도 없고 그냥 방안에서 버텨야 할것같다. 아침에 5시반에 일어나다 수업이 없어 게을러져 10시다 되어 일어나 송금하려니 공인인증서가 뜨지 않는다. 그래서 은행에 국제전화를 해서 원격으로 보는데 세 번이나 해도 안되 결국 은행에서 해결하겠다했는데 나중에 연결되었다. 그런데 3번 통화하는데 2만원이나 날아갔다. 맨첨 받은 여직원은 끊고 문자로 보내주는데 두 번째 부터는 계속 말도 않고 들고 있으니 선불카드가 바닥이 났다. 외국사람은 주거가 불분명하므로 선불로 요금을 받고 연결이 된다. 말하자면 주민등록이 없고 통장개설도 안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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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쇠사건을 말하고자 한다. 늘 밖으로 외출할 때는 열쇠를 꼭 챙겼었는데 (밖에 방금 나왔을때 문만 밀지 않으면 닫기지 않았을텐데) 생각도 없이 덜컹 문을 밀어 닫혀버렸다. 허둥대다 그만 열쇠를 방안에 둔채로. 집에 있을때야 가족들 누구라도 있어 관계없고 또 번호를 눌러 열기 때문에 키가 아예 없는데 이집은 키가 있어야 문을 열수있으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런데 어쩌나. 앞이 캄캄한데 당장 집주인한테 연락하는수밖에 없다. 전화를 거니 초등학교 딸애가 전화를 받는데 무심결에 한국말을 하니 애가 놀래서 수화기를 놓았다. 다시 거니 그의 부인이 주인의 휴대전화를 받는데 내가 누군지도 말도 않고 다짜고짜 설명을 하니(전화기에 누구라고 이름이 있으니 알긴 할 것이다.) 30분쯤 있으면 올거란다. 내집앞에서 내가 기다린다고만 전하고 전화 걸어달라 하기 미안해서 알겠다하고 끊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고 두시간이 지나고 3시간이 지나도 그담부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사이 이리저리 알아서 열쇠집에 전화한게 30분만에 온다더니 한시간만에 왔는데 문을 열고나서는 한배반을 더 불렀다. 여기는 깍기가 예사라 당초 부른 값으로 하자니 안된다해서 그냥 있는돈 톡 털어 주었다. 아무래도 아까웠다. 외국사람이란 걸 알고 더부른게 틀림없다. 문도 세곳이 잠기도록 되어있는데 한곳만 잠긴걸 아주 토요일이라고 세게 불러도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문벽에다 이렇게 붙였다. “열쇠, 스마트폰, 돈지갑, 교통카드, 우산밖에 붙이려다 내가 한글로 써놓으면 너무 표시를 내기 때문에 안에다 붙였다. 나갈때마다 그걸 확인해보고 나가라고. 한달반 교통비가 잠시 순간 실수로 날아가 버렸다. 물론 이게 나가지 않았으면 다른 손해를 봤을 수도 있을거라 생각하면 맘 편하다. 이날은 완전히 하루 종쳤다. 어디 가려고 나가다 완존 종쳤다. 게다가 집주인 전화오기를 기다리고 열쇠가게 직원오기를 기다리고 눈 빠질뻔 했따.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완전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열쇠직원이 와서 문 다 열어갈 때 주인 전화가 오니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미 들 돈 다 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학교마다 아침,저녁으로 주민에 개방하고 명절에는 주차장으로 활용도 하고, 학교 안에는 평행봉, 철봉을 비롯하여 온갖 많은 체육단련시설이 있는데 여기는 비개방이다. 물론 공원이라도 체육시설이 있으면 좋으련만 벤치만 있다. 사람은 매일 운동을 조금은 해줘야 하는데 나는 체조를 가장 좋아한다. 체조는 몸을 풀고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철봉에 매달려도 몸이 스트랫칭되어 좋고 평행봉도 좋다. 또 식사를 하고는 반시간 정도 걸어주는게 소화에도 좋다. 밥먹고 그 자리서 다른 일을 하곤 하면 나중 나이들면 몸이 캥긴다. 그래서 시설물 없는게 좀 불만이다. 이런 것은 개인이 만들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자마트에 가서 스탠드등을 하나 샀는데 799원이라 적혀 있어 계산하려니 1천백 몇십원이란다. 물론 이건 제일 싼 것이다. 보통 1500,2천원은 했다. 쓰고 나면 버려야 하기 때문에 싼 것을 골랐는데 회원카드있느냐 해서 없다하니 한배반을 더 내란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회원카드가 없어도 이런일은 없는데 단지 포인트가 적립되지 않는 것 말고는 회원카드 있어도 별로 도움되는게 없다. 천원에 2원인가 적립해주는데 장사하는 사람들 참 교묘하다. 소비자는 그 아무것도 아닌 포인트 적립하려고 지갑에 꼬개꼬개 넣어다니다가 물건을 사고는 내민다. 백만원어치 사면 2천원 적립해주는데 차라리 물건을 깍는다면 100만원짜리 사면서 10%를 할인해도 10만원인데 장난도 아니고 무슨 2천원인가. 그런데 여기는 왜 차별이 이리 심한가. 문구조차도 그러했다. 샤프연필을 사는데 110원적혀있어 계산하려니 회원카있냐 물어없다하니 145원을 받았다. 그냥 50%를 덮어 씌우는 것이다. 물론 잘은 모르지만 회원카를 요구하지 않는 집도 더러있다. 말하자면 그냥 적힌값대로만 계산 하면 되는 것이다.

 

중문을 배우면 타이 궤이러(너무 비싸요)”부터 배운다. 책마다 전부 그런식이다. 마트같은 곳은 물론 깍는게 없다. 그대신 까르푸같은 곳은 회원카있으면 쥐꼬리만큼 할인되는 것이 더러있다. 문화수준이 있는나라인데 이건 왜 못바꿨는지 궁금하다. 나라전체 상점이 다 할인하지 않는 가게는 아예없다. 완전 할인천국이다. 하나사면 하나를 거저주거나 둘사면 하나값을 받는거 같은 일은 아주 흔하다. 나는 그래도 신기한게 우산파는 가게다. 비오면 할인없고 맑은 날은 90%에 판다는 광고다. 맑은 날은 구름끼어도 비만 안오면 맑은 날에 속한다. 비도 안 오는데 우산 살 사람 누가 있을까 모르겠다. 왠 가게가 좀 장사가 되면 줄서기가 보통이다. 열명 스무명, 많게는 50명도 꾸부꾸불 살 사람이 알아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한국보다 훨씬 여자천국이다. 이발소부터 아예 남자는 이발사가 구경하기 힘든다. 헤어살롱도 여자가, 이발소도 여자가 한다. 주로 밖에서 식사를 사먹지만 집에서도 남자가 밥을 하고 여자는 여왕이다. 내가 아는 아저씨분은 식당가면 부인은 그냥 앉아 있는데 컵에다 차를 가져다주는 것에서부터 차가 떨어지면 냉큼 일어서서 찻잔을 가져가서 차를 따라온다. 그런데 차를 주는 집이 그다지 많지않고 보통 식당은 아예 물을 구경 못한다. 밖에 나와서 음료수를 별도로 사먹어야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부인 시중을 든다. 저렇게 시중들거면 장가는 왜가나 싶다.

 

버스를 타면 방제용링(말대로 라면 뭘 방지하기 위한 벨;ring)이 있는데 첨에는 이게 내리는 벨과 같이 생겨 그냥 눌르기 쉬운데 지금 알고보니 이건 성희롱이나 소매치기가 있으면 바로 눌르면 운전사가 알아서 경찰서로 가는 벨인 모양이다. 하차벨로 생각하다 며칠 지나고는 아 이게 떠드는 사람있으면 벨을 눌러 조용하게 하는 것인가 보다했는데 알고보니 아니었다. 보통 버스를 탈때는 앞뒤로 다 탈 수 있고 내릴 때 대부분 카드를 찍거나 현금을 내는데 현금 내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카드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부분의 버스가 카드를 찍는곳이 운전석 옆에만 있어 내릴때는 상당히 바쁘다. 앞문으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의 반쪽 앞은 경로석이고 일반은 뒤로 가야 앉을 수있는데 뒤에서 운전석까지는 짧은 시간에 가기는 무척바쁘다. 손님이 많을때야 당연히 한두정거장 전에 준비를 해야 하지만 적더라도 한정거장전에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지리를 잘모르는데 안내가 시원치 않으면(전광판이 잘 작동하지 않는 버스도 가끔있다 물론 운전사가 어디라고 안내를 하지만 말이 서툰사람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정거장을 지나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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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느끼며 낙서장 2013. 11. 11. 00:31

 

어제가 같은 어제가 아니듯 오늘이라 다 같은 오늘이 아니다. 어제가 가면 오늘이 오고 오늘이 가면 내일은 잊고 있어도 집나간 강아지 집 찾아오듯 찾아오기 마련이다. 똑같은 하루는 어디에도 있은적이 없고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우리의 마음도 항상 변한다. 오늘은 이걸 하고 싶은 데, 내일은 또 저것을 하고 싶게된다. 어제는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일이 오늘은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오늘은 이사람이 좋더니 내일은 또 저사람이 좋아지기도 한다. 같이 사는 가족이 아니라면 애틋한 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가족은 언제나 볼수있지만 밖에서 만나 정이든 사람은 같이있지 못하니 애착이 더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밖에서 이렇게 좋은데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막상 같이 살아보면 별로다. 뇌는 항상 새로운 것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듯이 신선한 것에 마음이 빼앗기기 마련이다.

 

변화는 흥분을 시키고 맘이 들뜨게도 하지만 슬프게도 한다. 같은 장소에 자주 놀러가면 재미가 덜하지만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면 정말 슬프다. 이처럼 좋은 것은 변화가 없으면 좋고 나쁜 것은 자꾸 바뀌어야 좋다. 아무리 사랑할 때 좋았던 사람도 정이 멀어지면 의미가 없다. 사랑하던 두 사람이 한쪽이 이미 마음이 떠났다면 붙잡아도 소용없고 이미 끝장난 것이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떠난 사람을 억지로 돌아오게 한다해도 한번 떠난 마음은 다시는 둥지를 틀수가 없다. 새가 새로이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아 기르던 정든 집도 한번 살고는 버리고 다음해에는 새 집을 짓는다. 큰애를 낳아 애지중지 했는데 작은애를 낳으면 작은 애에게 정이 옮겨진다. 이처럼 맘이 떠나면 바닥에 쏱아버린 아차싶은 물과도 같다. 죽은 사람이 다시 벌떡서는 일은 없다. 바닥에 쏟은 물은 현대과학이 영원히 발전해내려가도 과학으로 쏟지 않은 물로 되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언제나 서로 돌보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정이 떠나지 않도록 언제나 조마조마하며 맘을 잡아 두어야 한다.

 

 아무리 알뜰히 아끼고 살아도 돈이 빠져나갈때가 되면 다 빠져 나간다. 왜냐하면 변화란 그렇게 되는 것이 변화이기 때문이다. 해가 떠서 서쪽에 지고 하루가 가지만 어떤 것이라도 영원히 붙잡아 둘수는 없다. 태어날 때 멀쩡하던 몸에는 살면서 상처가 생기고 아니면 불구가 되고 따라서 맘에도 상처를 입고 수많은 실망을 하고 후회를 하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어도 후회와 실망은 끝이 없다. 아무리 부자라도 죽을 때 가지고 가지 못하며 빈손이다. 산다는 것은 어찌보면 슬픔이다. 먹고싶은 마음이 없어도 때가 되면 먹어줘야 한다. 아니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늘 배부르게 먹다가 한끼만 굶어보라. 세상이 캄캄해진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아무리 내가 간절히 원해도 내가 입에 밥을 떠 넣지 않으면 밥이 저절로 날라와 내입에 들어오지 않는다.

 

몸이 움직여지는 것은 영양분을 섭취해 주기 때문이다. 내몸이라고 한끼 두끼쯤 안먹어도 몸이 나를 이해하고 알아서 하겠지 해서는 그냥 입원실로 간다. 사람의 몸은 언제나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이 안 먹고 유지될수 있겠는가. 자동차에 기름없이 가자고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내가 아끼는 차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내말을 듣지 않는다. 찬 것이 들어오면 먼저 먹은 것이 소화되어 축적되고 저장된 에너지로 그것을 데워서 내몸과 같은 36.5도를 유지해야 한다. 몸은 언제나 놀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나는 놀고 있어도 실제로 몸은 결코 놀지 않고 내몸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어떤때 나는 세월을 잡아먹는 벌레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모든 것은 때가 되면 변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몸을 잘 챙겨도 정해진 나이가 되면 건강하게 보여도 죽어야 하고 병들어도 죽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답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 배가 나오고 피부가 탁해지고 주름이 늘어나는데 다 끝이다. 물도 벌컥벌컥 들이키고 맘대로 뛰놀던 때가 좋지, 거북이 기어 다니듯이 겨우 겨우 앞만 내려다보면서 마을을 한바퀴 돌고는 집에 들어간다면 산다는 재미가 별로 없다. 그냥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때가 되면 어떤 병이 걸려야 하고 때가 되면 누구와 헤어져야 하고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태양은 언제나 떠있고 ,달도 언제나 떠있고, 지구도 언제나 돌아가지만, 그 위의 생명만은 영원하지를 못한다. 감동적이고 감미로운 노래를 선사하던 보컬멤버가 오늘 한사람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 또 한사람 바뀌고 나중에는 처음에 같이 노래하던 멤버는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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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낙서장 2013. 10. 31. 13:36

우리는 몇 십년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중 하나였는데 아시야에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가 없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조차도.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나마 살수있다는게 다 고박정희 대통령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내 아버지가 못 배우고 못 생겼다고 남들 앞에서 부끄럽다고 저 사람은 내 아버지가 아니다해서는 안된다. 아버지가 없으면 잘 난 나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해외에서 열심히 노력한 우리기업도 한국을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한나라 국민이 해외에 나가 그래도 기를 펼 수 있는 것은 그 나라가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다. 한국은 대단하고 경제대국이며 인터넷강국이고 휴대전화는 세계를 석권하고 있다고 알면 기분이 좋다. 외국 가는 곳마다 네거리에 한국 상품을 선전하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다.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란 말이 없어진지도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 당시는 미군이 많이 와있을 때라 미군을 보기만 하면 애들은 껌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으니 그 부모는 얼마나 처량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인가. 요즘에는 껌달라고 남에게 애걸하는 애들이 없다. 할필요도 없고 하도록 부모가 그냥있지 않는다.

 

지금도 어딘가에는 내다버린 쓰레기 속에서 먹을 것을 찾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먹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자기 부모형제자매를 먹여 살리려고 무식하고 맘에도 없는 나이많은 부자한테 시집간 처녀도 많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지만 배고플 때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잘 사는 것도 혼자 잘살기는 어렵다. 주변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살게 된다. 주변이 못사는 사람뿐이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돈벌이가 되지않는 것이다. 발전은 같이 하는 것이지 혼자만 발전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변 여건이 형성되어야 나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직업이 어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고 그 물건을 내다 팔아야 하는데 모두가 다 못살아 사려는 사람이 없다면 물건을 팔수도 없고 또 더 이상 만들수도 없다. 만든 물건이 팔려야 새로운 물건을 다시 만들 수있기 때문이다. 팔리지 않는데 또 다시 생 돈만 들여 물건을 어떻게 만들겠는가. 절대로 만들 수도 없고 돈을 벌수가 없다. 먹는 것 다음으로 옷과 집인데 이 세가지가 다 풍족해지면 색을 탐하고 띵까띵까 즐길 것이 눈에 들어온다. 돈이라면 이런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재산은 모으기는 힘들어도 없어지는 것은 잠시 순간이다. 착하게 살던 사람이 한순간 생각을 잘못해 그럴수도 있고, 집안에 중병환자가 하나 생겨도 그렇고, 방탕아 하나 잘못 낳아도 재산 날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앞날이 창창히 남은 젊은 사람은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누구를 만나도 설렌다. 삶자체가 설레임 뿐이다. 젊을때는 피부도 탱탱하고 혈색도 고와서 어지간히 못생겨도 혈색과 고운피부가 뒷받침해줘서 이쁘게 보인다. 모녀가 같이 걸을 때의 모습을 보라. 그 딸이 늙으면 아마 그 엄마와 얼굴이 비슷하게 늙을 것이다. 모든 물건은 오래되면 바래듯이 사람도 늙으면 모든 것이 고장이 잦다. 피부가 보기 싫게 늘어나서 필요하지 않은 주름살이 생겨 얼굴이 보기싫게 변하고, 피부가 탁해지고, 머리가 희어지고, 생각이 둔해지고, 운동신경이 둔해지고, 말이 잘 안들리고, 눈이 침침해 지며, 모든 일이 귀찮아 진다. 아무리 아름답던 옆집 순이도 세월이 흐르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고 군살이 쪄서 예쁘기가 예전만 못하다. 잘나가던 가수나 동경하던 연예인이 늙으면 불러주는 방송국도 없다.

 

학교다닐 때 친한 친구도 몇십년 떨어져 생활하다 오랫민에 만나게 되면 예전만 같은 기분이 아니다. 떨어져 있으면 생활환경이 달라 생각이 많이 변해 있기 때문이다. 친하면 자주 만나야 하는데 안 만난채로 오랜 시일이 흐르면 교류가 되지 않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친할수록 자주 만나고 얘기도 자주 해야 한다. 친한 친구로서 오래 지속하려면 자주 만나야 하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남같이 느껴지고 서먹해진다. 여자와 바가지는 밖으로 돌리면 물이 샌다는 옛말이 있지만 오래 떨어져 있으면 내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변해있기 쉽기 때문이다. 하늘이 부부가 되게 맺어줄때는 1;1로만 사랑하며 잘 살라고 한것이지만 리모콘처럼 자기말을 잘 따르지 않는 상대를 언제나 사랑해주기가 벅차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내가 아프면 만사가 다 귀찮다. 그러니 조금더 젊을 때 몸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걸 먹으면 이빨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 위장은 소화를 해낼까. 소장은 음식물을 잘 흡수해낼까, 이게 영양분이 되어 눈이나 귀나 코나 입이나 정상 가동될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내몸을 아낀다는 것은 이걸 먹어 내몸에 지장이 있을까 없을까를 따져보는 것이다. 찬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설사를 했다면 내 몸이 별로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좋다면 소화시켜버릴텐데 설사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내몸은 컴퓨터 보다도 더 정확하게 어떤 것이 몸에 일단 들어오면 진단해서 처리하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내몸의 따뜻한 수분 소변이 밖으로 빠져나가기만 해도 몸은 드르르 떤다. 신체의 온도를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듯한 수분이 몸에 있어 36.5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게 빠져나가 버리니 조절해서 남은 수분으로 온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몸의 기능들에 대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퇴근만 하면 술을 위장에다 부어 넣기만하고 관리는 제대로 하지않으면 오래지 않아 그 죄값을 받게된다. 위장병,위암,위궤양 같은 것이 생기게 된다. 물론 위장에 병이 생기는 것은 생것을 먹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날것을 먹지않는 다른나라는 위장병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말이다. 세계에서 날 것을 먹는 민족은 한국과 일본이 고작이다. 중국은 채소조차도 튀겨서 먹지 우리처럼 쌈을 싸먹거나 날것으로 먹지 않는다. 더욱이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민족은 없다. 무슨 가자미회, 도다리회, 광어회, 물회, 육회, 생고기등은 별로 권장할 음식이 못된다. 물론 생계란, 우유조차도 꺼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다 죄 때문에 병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것은 죄를 지은후 그 대가로 벌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죄를 짓는다고 그 자리서 바로 모두 벌을 받을수는 없다. 대부분은 남 모르게 죄를 짓는 것이 많아 이것이 훗날 벌이 되어 병이나 어떤 손실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병이 아니면 물질적으로 손해를 본다든가 남에게 이유없이 욕을 얻어먹는다던가 하는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병이들거나 돈을 사기당하거나 돈을 잃어버리는 것은 다 돈과 관계가 있고 어디서 넘어져 다친다던가 높은데서 떨어진다던가 누구에게 얻어맞는다던가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남에게 뺨을 한 대 때리면 그 벌로 빰을 한 대 얻어맞아야 하는 것과 같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말하자면 남을 공짜로 한 대 때릴수는 없다.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진실한 사람들 중의 하나가 종교인 말고는 파룬궁수련생이라는 말이 있다. 착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없다. 진실한 삶을 사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해롭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파룬궁수련생은 수련으로 병이 없고, 병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착하고 진실하게 산다면 죄를 지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큰죄는 중병이 걸려 죽음으로써 갚을 수 있고, 작은 병은 앓고 나은후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죽으면 큰 죄값을 치르는 것이고, 잔병을 앓으면 작은 죄값을 값는 것이다. 이렇다면 사람은 환생함을 알 수 있다. 어린이가 무슨 죄를 지은 것이 있어 병이 있겠는가. 그것은 생전에 지은 죄를 태어나면서 가져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70살에 당뇨병에 걸리도록 되어있었는데 이 사람이 69살에 죽어 다시 환생해서 태어난다면 1년만에 당뇨병이 걸리는 것이다. 늙어서야 걸릴 수 있는 병을 어린이가 걸리면 병원에서는 현대병이라 부른다. 시중 서점에 가면 전법륜이라는 책이 있는데 업력에 관하여는 제4실과 득”, “업력의 전화”, 7병치료 문제라는 부분을 읽고 참고해 쓴 것이다.

 

해외에 나와있으면 다 애국자가 된다. 그나라에 많은 한국인이 오면 좋게 생각할 것이고 호의를 가질 것은 뻔하다. 또 만나면 대화를 하기 마련이고 호감을 갖고 대화를 하면 좋은 반응을 할 것이다. 지금 대만은 한국 음식을 상당히 선호한다. 다 한국사람이 알려주고 안내해주고 설명해 주어 그렇게 된 것이다. 김치, , 라면, 고추장 뿐만아니라 왠만한 것은 아예 한국식 무슨 먹거리 이런 식의 표현을 쓴다. 일본산 김도 있는데 일본산은 크기가 형편없이 작다. 우리김 크기의 반정도다. 파는김은 이렇지만 집에서 구운김은 실제 한 장을 구우면 4장을 만든다. 그래야 싸서 먹을 수도 있다. 우리가 김한장으로 4장으로 자른다면 일본이라면 25장은 만들 것이다. 워낙 잘게 써니까. 수업시간에 한국산 구운김과 밥을 가져와 알리는가 하면 한국음식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은 어떻고 대만은 어떻다고 늘 말하니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을 알리는 자체가 나를 알리고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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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학교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 가서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요금을 냈다. 인터넷 요금은 중화전신에 가서 내려고 했는데 한데 가져가다보니 같이 주게되어 이미 합한 요금이 얼마라고 나왔기 때문에 냈다. 인터넷요금인데 받느냐니까 받는다고 해서 중화전신에는 안가도 되게 됐다. 나는 마트에서 세금을 받는다길래 반신반의 했는데 정말 받으니 놀랍다. 여기서는 세븐일레븐같은 마트에 가면 공공요금을 다 받아준다. 물론 은행에 내도 되고 전화국이나 발송한 기관에 가서 내도 된다. 그러나 시민의 편의를 위해 가까운데서 내도록 한 것이다. 마트에 가도 영수인장 스탬프를 찍어준다. 편의점은 번호표를 안뽑고도 얼른 일을 볼 수 있는 반면에 은행같은 데는 무조건 번호표부터 뽑아 기다려야 하니 시간낭비가 많다. 내가낸 세븐일레븐은 두,세집 지나면 바로 있어 아주 가깝다. 우유사러 자주 들르는 곳이다.

 

여기는 학생용 방은 대체로 6천에서 7천원 정도, 세탁기와 화장실을 혼자쓰려면 8천원 넘어간다. 물론 시 외곽에 있는 것은 독채라도 6,7천 정도라고 한다. 우리돈으로는 ×40을 하면된다. 그러니 대만돈 6천원(류치엔콰이)이면 한국돈 24만원인 셈이다. 나는 방을 좀 비싸게 있는데 주변환경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물한간을 사서 리모델링한 듯 바깥에 있는 것은 다 고물이다. 대문이 그렇고. 엘리베이터도 그렇고 출입문짝도 그렇다. 그러나 방안은 그런대로 깨끗한 편이다.

 

대만은 우리와 같이 을 쓰지만 공식적으로는 뉴타이완달러(TWD)라고 한다. 그러나 몇 달러라는 말은 쓰지않는다. 왜냐하면 화폐단위가 우리와 똑같은 으로 지폐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류상은 위엔으로 쓰지만 말할때는 원(위엔)이라 하지않고 액수뒤에 콰이 치엔을 붙인다. 100원이면 이바이로 끝내거나 이바이 콰이또는 이바이 콰이 치엔이라 한다. 점심을 먹는데 얼마냐니깐 이바이이쓰라고 했다. 못알아듣고 110원을 주니 4원 더 달라고 했다. 원래대로 하면 이바이이스쓰(一百一十四)’라해야 한다. 물론 410발음이 다르다. 성조가 다르고 영어스펠이 다르다. 102성이고 44성이다. 10(shi2)으응뭐라고?’ 할 때 으응에 해당하는 발음이고 4(si4)는 까마귀가 할때의 으로 내려찍듯 라고 발음 한다. 나는 아직도 12를 계속 틀리는데 은 발음이 이고 는 발음이 인데 이바이하면 100인데 자꾸 200으로 알아 계속 헷갈린다.

 

위에서 보듯이 중문을 전혀 모르면 si라 써놓고 왜 라 안하고 라 하느냐 하는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ic,s,z,r뒤에서는 로 발음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ci가 되고 si가 되는걸 알 수 있다. c발음이 없다. k밖에 없다. 왜 그러냐하면 그렇게 정했다. 아무한테도 따질수 없다. 그렇게 정한것이니까. uj,q,x,y뒤에서는 가 아니고 로 발음한다. 말하자면 ju로 발음한다. 따라서 영어로 쓴 글자대로 읽지 않는구나 하고 알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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