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위 건설 세계 최장 '항저우만 대교' 상판 공사 시작
중국 창장(長江) 삼각주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하이(上海)와 닝보(寧波)를 잇는 항저우(杭州)만 대교 상판 연결 공사가 26일 오후 거행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맞춰 완공될 전체 길이 36㎞의 항저우만 대교는 바다 위에 건설된 세계 최장의 다리로 4시간이나 걸리는 상하이-항저우-닝보 구간을 2시간 이내로 단축하게 된다.

2003년 11월 착공, 내년 6월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는 왕복 6차로의 항저우만 대교는 인민폐 160억 위안(2조 1천억 원)이 투입된 대역사로 중국 토목 기술을 한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항저우만 대교의 개통으로 중국 정부는 최대 도시 상하이를 선두로 이 지역의 개방을 더 확대하고 창장 삼각주 지역 간의 교류와 협력을 가속화시킬 방침이다 .

저장(浙江)성 교통당국은 항저우만 대교가 완공되면 창장 삼각주의 급증하는 교통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상하이를 중심으로 2시간 교통권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닝보시는 상하이를 오가는 교통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동시에 창장 삼각주의 대표적인 교통 요지로 부상, 항저우만 지역 개발의 핵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닝보일보(寧波日報) 제공]

[수암칼럼] 불가사리 중국 코앞에서…

50년 전인 1958년 4월,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인류 역사상 국가 지도자가 저질렀던 失政(실정) 중 가장 어리석은 결정’으로 꼽히는 바보 같은 명령을 내린다. 이른바 ‘대약진운동’이다. ‘강철 생산을 4배로 늘려라’는 지령 한마디에 곧바로 1억 명의 인민이 멀쩡한 일터를 팽개치고 철강 생산에 동원됐다.

전국 마을 곳곳에 무려 60만 개의 속칭 ‘뒤뜰 용광로’가 급조됐다. 그러나 갑작스레 증설한 60만 개의 용광로에 들어갈 막대한 철광석 원료가 제대로 공급될 리가 없었다. 목표 달성에만 혈안이 된 지방 黨(당) 간부들은 맨 먼저 집집마다 쇠냄비와 프라이팬 같은 주방기구부터 거둬다 용광로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조리기구가 부족해지면서 취사가 힘든 지경이 되자 인민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택동은 ‘식사는 공동식당에서 집단으로 하고 개인이 음식을 만드는 것은 금지한다’는 해괴한 지시를 하달했다. 취사도구가 바닥나자 60만 개의 용광로는 농민들의 곡괭이, 쇠스랑, 도끼, 호미를 삼키기 시작했다. 목장과 축사에는 철망을 걷어가 가축이 도망가는 등 목축업까지 엉망이 됐다. 그러나 미친 약진운동은 계속됐다.

열성 당 간부는 농업용 차량까지 뜯어 녹여가며 실적 올리기에 급급했다. 트랙터 같은 농기계 생산 등을 위해 벌인 철강 생산 증강 운동이 거꾸로 이미 만들어진 농기구 기계를 되녹여 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운동으로 변질된 것이다. 거기다 석탄 연료가 떨어지자 木炭(목탄) 생산을 위해 나무를 무차별 벌목하고 들판에서는 과수나무까지 베어내 과일값이 폭등했다. 추수기가 됐지만 추수 일꾼이 용광로에 매달리느라 들판에는 농작물이 그대로 썩어갔다.

그래도 단위농장 간부들은 ‘수확이 예년의 곱절’이라고 허위 보고를 했다. 어느 누구도 바른말을 하지 못했다. 온 나라가 미쳐 있는 3년 동안 3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갔다. 결국 덩샤오핑(鄧小平) 세력의 비판과 반발에 밀린 마오쩌둥이 마지못해 권력을 넘겨주면서 대약진운동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덩샤오핑 파가 캐나다와 미국으로부터 곡물을 긴급 수입, 인민의 기아를 멈추게 했지만 마오쩌둥은 기다렸다는 듯 서구 부르주아 사상 논리로 딴지 걸어 문화 혁명을 일으킨 뒤 실용파를 다시 숙청시키고 재집권했다. 현대 중국의 발전을 수십 년 후퇴시켰던 좌파적 문화 혁명의 뿌리는 결국 철저히 실패한 제철사업에서 비롯된 셈이다.

그 뒤 50년이 흐른 지금 중국은 다시 제철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거기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엄청난(한 해 4억 2천만t) 철이 소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중국 고철 수출량도 21만t으로 2004년 대비 2배로 늘었다. 거대 중국이 불가사리처럼 인근 국가들의 쇠붙이를 빨아들여 삼키면서 고철 값도 두 배 이상 뛰고 덩달아 고철 도둑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일본은 중국 고철 값이 오르면서 길거리 가드레일 등을 뜯어다 파는 고철 도둑이 설치자(5천700건) 경찰청이 ‘고철 도둑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오쩌둥의 ‘뒷마당 용광로’ 60만 개는 기껏 자기나라 농민들 부엌에 프라이팬이나 녹이다 끝났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의 중국은 저네들 프라이팬 대신 한국, 일본 등 이웃나라의 전선, 맨홀, 가드레일을 빨아들여 녹이고 있다. 세상이 무섭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난리만 좀 나도 1천만 명에서 8천만 명이 수해를 피해 움직이는 거대 중국.

그런 중국을 어리석은 뒷마당 용광로 시절의 중국으로만 생각하고 가드레일 몰래 떼다 돈 몇 푼에 팔아먹는 정신과 야당 후보 주민 초본 몰래 떼다 팔아넘기는 분열 정신으로는 경제주권도 국가 자주권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킬 수 없다. 불가사리 중국의 코앞에서 지금 우리는 어디에 딴 정신을 팔고 있는지를 곰곰 생각해 봐야 한다.

김정길 명예주필

『인권 성화』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합니다


2001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2008년 올림픽 개최권을 베이징에 준 것은 중공이 열악한 인권상황을 개선할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


2008년 올림픽이 겨우 14개월 남아 있지만, 중공의 인권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국제 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 그리고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웹사이트를 보면 수많은 중공의 인권위반 사례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중국정부가 최근 언론매체에 대한 통제를 해제했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언론에 대한 탄압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엔난민기구(UNHCR) 친선대사로 있는 미아 파로(Mia Farrow)는, 국제사회가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을 “집단학살 올림픽(The Genocide Olympics)”이라 칭하고 만약 중국이 수단정부의 인민학살 행위를 지원하는 것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올림픽을 보이콧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캐나다 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David Matas)와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킬고어 (David Kilgour)(http://organharvestinvestigation. net)가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생들로부터 불법으로 장기를 적출하여 매매한다는 조사보고를 발표한 다음 창립된 파룬궁 박해진상연합조사단(CIPFG)은 최근 베이징 올림픽을 “피에 물든 장기적출 올림픽(Bloody Harvest Games)”이라 규정했습니다.


중국은 유엔인권이사회의 일원이므로, 인권 원칙을 준수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오늘날까지 중공정권은 이 원칙을 존중하거나 준수하겠다는 아무런 징조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이징 올림픽이 위에 상술한 잔혹행위와 동시에 진행될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올림픽 정신을 크게 우롱하는 것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평화로운 사회의 건립”을 고무 격려한다는 올림픽 헌장의 성명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현 지도자들은 올림픽의 성공에 거의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인권문제를,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의제로 올려놓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올림픽 성화 릴레이에서 영감을 받은 전 세계 인권성화릴레이에 참여하고 지지하도록 귀하를 초대합니다. 귀하의 지지로 우리는 인권성화의 횃불을 붙일 수 있고 2008년 올림픽으로 하여금 인간존엄성을 우선하게 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인권성화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전 세계 인권성화 릴레이를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박해진상연합조사단 (CIPFG) www.cipfg.org

中 광시성 장갑차 동원해 민중항쟁 진압

주민들 진(鎭) 정부 포위하기도

▲ 사건이 일어난 광시성 다화야오족 자치현
ⓒ 인터넷이미지
[대기원] 7월초 중국 광시성 다화야오족(大化瑤族)자치현 옌탄진(岩灘鎭)에서 만여 명의 주민과 경찰들이 충돌했다. 민중들이 진 정부를 포위하고 수력발전소 건설로 인한 피해보상을 요구하자 당국은 장갑차를 동원해 이들을 진압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일부터 4일까지 옌탄진 댐 인근에 사는 만 여명의 주민들은 4일간 계속해서 진 정부, 수력발전소 등을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홍콩 명보(明報)에 따르면 당국은 무장경찰과 특수경찰, 경찰차 수십대, 장갑차 10여대 등을 동원해 민중들의 시위를 진압했다. 이번 충돌에서 적어도 5명의 농민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 기자가 전화로 옌탄진 정부에 문의하자 한 관계자는 이 사건이 이미 상부에 보고됐으며 여러 기초시설 항목을 건설해 민심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이 민중들의 시위를 무력 진압한 사실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했다.

농민 류씨는 “생활이 너무나 어려워 베이징에 탄원서를 냈으나 거부당했으며 정부에서 많은 경찰을 투입해 우리를 탄압했다. 강 어귀에 많은 경찰이 지키고 있어 사람들이 강을 건너 탄원하러 가는 것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10년 전 중공 당국이 이곳에 두개 댐을 건설해 인근 밭들이 물에 잠기자 농민들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당국의 보상은 최저생계비에도 모자랄 만큼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집과 경작지를 잃은댐 인근 9만1천여 명의 주민들은 산으로 이주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자신의 혈액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왔으며 심지어 자식까지 판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들은 이것은 공산당이 역대로 조성한 문제라며 외부에서 이 사건에 주목해 줄 것을 호소했다.

뉴욕=구칭얼(古淸兒) 기자
보너스 디카여행 2007. 7. 15. 23:32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이탈리아 로마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육상연맹(IAAF) 주최의 400m 경기에 참가해 달리고 있습니다.

한 살 때 선천적 요인으로 양쪽 무릎 아래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사용해 온 피스토리우스는 그동안 럭비와 수구 선수로 활동하다 최근 육상 선수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그는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100m에서 10초91을 기록해 3위를 차지했고, 200m에서는 21초79의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또 2005년에는 장애인 대회가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권대회 400m에 출전,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첫 장애인선수의 꿈이 무르익자 전문가들은 '피스토리우스가 베이징 올림픽 때 남아공 계주팀에서 활약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그의 100미터 최고기록은 10초91입니다.

그의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그의 달리기는 장애라는 인간과 세상의 을 뛰어넘는 무한한 도전 입니다.




호주의 태스매니아의 서부 해안에서 무게가 250kg에 길이가 무려 8m에 이르는 오징어가

죽어있는 상태로 발견됐네요~

이 정도 크기의 오징어라면 아주 깊은 심해에 있었을 텐데

왜 여기까지 와서 죽었을까?

한번만이라도 육지를 밟아보고 싶었던 거야? 그런거야?

죽은 오징어를 씻어서 확인하는데?

오징어의 엄청나게 큰 이빨~






저는 요즘 어학연수며 유학을 많이 가는 영어권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거의 쓰지도 않는다는 독어권에서 공부하고 있는데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프랑크 프루트나 뮌헨 등 큰 도시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한국을 떠나 지금까지 4년 가까이 지내면서

유학생활에 대해(딱 꼬집어 말하자면 조기유학)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조기유학의 가장 좋은점은 공부만 아는 바보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봐왔던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은 공부만 하기에도 너무 바빠보였습니다.

초등학생들은 중학교 과정을 중학생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학원에 과외에 치여서 대학 갈때까지는 정말 숨 쉴 틈도 없이 달려야만 하니까요.

심지어는 친구들에게 학원 다니는 사실도 쉬쉬하면서 새벽까지 남들보다 학원 하나라도 더 다니려고 하는 언니도 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은데 그때는 저도 그 학년이 되면 그래야 되는 줄 알았습니다. 거기다 허술한 수행평가에도 시달려야 하니..

여기와서 가장 감사하며 학교 다닐 수 있는 건, 완벽한 1:1 맞춤 학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학생들의 생각이나 원하는 강점 과목을 파악해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학교에서 농구를 하는데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못하기는 많이 못하지만요^^:)

운동이든 악기든 하고 싶으면 한국에서처럼 큰 돈 들이지 않고도 학교에서 대부분 가르쳐주거든요..심지어 악기 살 돈이 없으면 학교에서 악기를 대여해주기도 하구요


음..이건 좋은 점이기도 하면서 게으른 친구들한테는 안좋은 점일 수도 있는데....

시험 볼때 객관식 문제가 없어요 거의 없는게 아니라 아예 없어요

아직까지는 객관식을 못봤네요 무슨 리서칭할때나 그런 때 빼고는^^:

처음에는 시험지 받자마자 멍~하니 당황하기도 했었는데 글도 자꾸 쓰다보니 조금씩 글쓰는 요령이 생기는지 주관식이나 서술식 시험도 적응이 되는거 같고 글을 쓰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하고 많이 생각해야 되서 좋은 것 같아요

(친구들은 글을 잘 쓰게 되면 말도 잘 하게 된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그건 좀 ㅋㅋ)

우선은 학교 생활에 대해서 써봤어요
저는 지금 생활이 충분히 좋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노력하다보면 좋은 결과도 있을꺼라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한거 같기도 하네요ㅎㅎ

그냥 블로그에만 글을 남기려고 하다가 어이없는 영국 기사들이 헤드라인이 되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6월달의 마지막날 클럽데이에, 강남 NB클럽앞에 폭탄으로 가득찬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면.(경찰이 먼저발견) 뒤에 한강변에 No.2 폭탄차량이 세워져 있었다면(행운스럽게 폭발직전 발견처리). 삼일후, 김포공항에 폭탄을 실은 차량이 느닷없이 돌진해 폭발을 일으켰다면...

일들이 내가 요즘 아침마다 식당가서 식사하면서 보는 신문에 나온 기사들이다. 테러와 세번째테러는 한국에 보도 되지 않을걸로 알고 있다. (이런 기사를 영국에서도 그냥 하루 실고 말고; 두둔하는건지 .) 2005 7/7 지하철 폭탄테러가 피카델리 라인의 king’s cross에서 이미 발생해 5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이층버스 폭탄테러도 있었다.) 후로 영국 이민국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보안을 강화했지만 테러는 발생했다. 1주일간 이러한 일들을 신문에서 접하니 내가 공부하러 온건지 전쟁지구에 테러 경험하러 온건지 분간이 안갈 정도였다.

극도로 두려워 지하철은 멀리하고 되도록 나가지 않았다. 하루걸러 일어나는 폭탄테러시도. 런던 시내를 향해 일어나는 이런 테러가 어떤자가 무섭지 아니하겠는가.

일전 , 정말 어쩔수 없는 상황이 있어서 센트럴 런던지구에 있는 은행가를 가야했다. 이층 버스를 이용해야했던 상황, 이층 제일 뒤에 앉아 누가 먼가를 놔두고 가는지 감시를 했다; 살고 싶었으니까.. 안그래도 대중교통에서 일어나는 자살폭탄테런데 누가 안쫄겠는가. 하지만 나말고 다른 런던 시민들은 너무나 평온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이해가 안갈 정도로..

무사히 도착후, 일을 보고 잠시 은행중심지를 구경하며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 ! 순간이였지만 바로 식은땀이 흐리고 몸이 굳어 버렸다. 화물차량이 지나가면서 맨홀뚜껑 소리였다. 진짜 이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테러니 어떻게 할수도 없고.. 미칠거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사람들은 못들은거 마냥 다시끔 자신의 길을 재촉했다. 완전 바보 됐다.. 나만 무서워하고 쫄고 숨고; 주위 둘러보고 ..

너무 이해가 안되서 지하철교통의 요지인 Liverpool 역에 목숨?걸고 들어가 봤다.

패트롤 6명뿐.. 그런 유동인구가 많고 대중교통의 요지인 역에 고작 패트롤 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미 신문으로 세차례의 테러 시도가 있었기에(국가 보안 상태도 가장 높은 등급이 내려졌다) 분명 무장경찰과 탐지견등이 런던의 시민을 보호하고 있을거라 (당연히 선진국가로서 이럴때 그런 저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왠걸.. 6 패트롤도 수다나 떨고 길이나 알려주고 자기 핸폰으로 전화하고 있었다. ( 영국사람들의 성격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건..)

내딴에는 정말 유동인구 넘쳐나는 교통요지의 상황을 체크해보러 목숨걸고 왔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만약 이런 사건이 연이어 터졌으면 사회분위기가 어떠했을까 ; 주식은 폭락하고 학교도 휴교상태에 들어가고 사회가 불안에 떨고 있지 않았을까

토니 블러어; 총리자리를 브라운에게 넘겨준; 이라크 파병을 승인한 이유로 다른 모든 그의 우수한 정치개혁등이 빛을 바랬다고 들었다. 퇴임하는 그날도 쓸쓸하게 환영없이 지나갔다는. 이라크 전쟁은 명분은 테러분자 제거에 있지만 명분아래 행한 잔학 또는 제국주의적인 행동은 테러분자들에게 다른 명분을 주는 것이였다.

최근 뉴슨엔 테러진압에 10년이 걸릴거란다. M15(정보기관)등에서 05 지하철 폭탄테러이후 2배나 많은 용의자들을 걸러내고 이민국에서도 더욱 철저하게 입국자를 검사할거라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 있을거 같진 않다.

영국에 와서 머리속에 선진국가라는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를 느꼈다.

내가 느낀 지금현재의 선진국가 의미는 첫째가 경제발전이고 두번째가 사회제도정비의 정도이다. 조건에 영국은 분명 선진국가 대열에 앞장서고 있는게 맞지만, 내가 느낀 영국시민의식, 그리고 매체를 통해 들은 미국 시민의식 수준은 개발도상국이라 느껴진다.(패리스 힐튼의 뉴스가 헤드라인이 되질않나.. 런던신문,방송역시 패리스 힐튼은 꼬박꼬박나온다 그리고 배컴;) 몇몇 깨인 사람들이 무단한 노력으로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려 노력하고있을뿐..

국민이 국가가 내린결정으로 인해 테러를 당하고 이러면 어쩌자는건가. 테러의 원인을 제거해야지 그저 테러일으킬만한 용의자들이나 찾고 검색하고 하면 해결된다냐.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하는데 어떤 애국자든 나와서 복수를 할것이 당연지산데. 지금도 이라크의 몇몇 단체가 국가자주성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명분상 문제가 없다고 보여진다.(제 생각;)

런던 London.. 첫날 왔을땐 "와 런던이다 런던에 내가 왔어" 하며마냥 신나했던 그리고 런던의 고풍스러움에 반해버렸던 나였지만, 런던은더이상 아름답지 않은 도시다.

........

P.S

신문기자님들 제발시덥지 않은뉴스말고 우리를 생각하게끔하는뉴스를 들려주세요; (참고로 전 이 테러 사건때문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대학졸업후 미항공사근무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독일남편만나서 일본발령근무하다가

독일들어온지 지금 딱 3년째로 나름대로 생존(?)의 법칙을 터득하며 독일생활을 그럭저럭

하고 있었죠.

나름 한국과도 조금 비슷하고 일본과도 비슷한 독일의 생활이 그닥 나쁘진 않았어요.

더이상 하고말고가 아닌 생존을 위한언어라 독일어를 집중적으로 익혀야지 여기서

어깨펴고 산다는 제나름 판단으로 애키우며 살림하며 독일어학교다니며 말이죠.

제가여기 제 개인얘기를 쓰는건 하도 황당한 경험을 해선데 말이에요.

학창시절부터 원래 조금 유머스럽고 활달한 성격때문에 친구들이 많았는데 여기서도

무척 부족한 독일어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독일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동네아줌씨부터 아이의 유치원엄마들, 학교친구들 등등,,

당연히 많은 사람들과 지내면서도 H?한국고향생각으로 조금 착잡해지긴 했어도

그냥 좋았어요. 만사가 무난하게,,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동네 사는 일본친구를 알게되었는데 알고보니 같은유치원의

아들을 두고 있더라구요. 집도 가깝고 같은 유치원 엄마이고점점 가깝게 지냈죠.

일본에 3년반을 살아보니 참 일본사람들 그렇더이다.

역사의 진실거짓을 떠나 얘네들의 국민성이 우리랑은 조금 다른, 간사하고 뒤에서

남욕하는건 부지기수고 그러니 국가대표자들도 한번

씩 망언을 하는것 보면 그 국민성에서 충분히 그럴수 있겠다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죠.

근데 이친군 독일서 14년간 살아서인지 일본인에 가깝다기보다 오히려 독일인에

가까운, 그런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괜찮았어요.

울동네는 한국인이 없어서 전 일본인친구로라도 위안(?)을 삼으며 정말 터놓고

김치담그면 두쪽, 비빔밥 해먹고, 부침개 같이 해먹으며친자매처럼 지냈는데요,

그렇게 알고 지내온지 거진 3년, 제가독일오자마자 알던친구라,,

누굴 한번 믿으면 정말 눈도 깜짝않고 그사람을 믿고 따르는 성격이라, 정말 이친구를

의심한번 않고 믿고 따랐는데, 알고봤더니 이친구가 거진 2년넘게 저를욕하고 완전히

미친년취급하는헛소문을 퍼뜨려왔더군요.

제가 얼마나 미련한지 그걸 요즘에서야 알게되었는데요,

그소문의 요지는 아동학대라느니, 동성애자라느니 그딴 말도안되는, 특히 일본은

유럽에서 무척 알려져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오지라서 사람들이 긴가민가하면서도

그걸 듣고는 절 슬슬 피해왔던거에요.

5월달엔 핑스턴휴가가있어 2주간 가족이랑 이태리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친구가 이왕이면

같이 가자고 해서 전 흔쾌히 그러자고 해서 두가족이 같이 가기로 했는데 여행지떠나는 날

같이 떠나기로 한 약속시간보다 3시간이나 우리가족을 기다리게하고 그래서 조금

의아했지만 애가 셋이나 되니 준비가 많고 바쁘다는 말에 마냥 기다렸죠.

어쨌건 여행지에서도 조금 이상한 히스테릭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이를테면 울남편이 수영복을 널고있고 자기남편이 벤치앉아서 담배태우고 있으면 뭘

다집어던지고 애들에게 화내고 그런, 그래서 새삼 저런부분도 있구나 이친구,,

피곤한가보다싶어 그친구남편에게 부인이 힘드니 너가 좀 도와주라고하고 이친구의

10개월아들도 제가 많이 돌봐주고, 심지어 울남편이 나보고 너 이태리휴가와서베이비시터

나 하고있냐고 빨리 해변에 수영하러가자고 뒤에서 핏잔도 주고그래도 전 피식 웃기만

했는데,,

모르겠어요 전 그냥 가장 친한친구랑 사랑하는 가족이랑 휴가와서 행복했고 있는동안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 왔을뿐,.

그러곤여행을 갔다온직후 갑자기 유치원이나 동네분위기가 싸악 이상해지는거에요.

저랑 친한독일엄마들이 저만 보면 슬슬 피하고 인사도 안하고 그러고보니 자주 전화하던

친구들도 전화벨이 안울린지가 꽤 된걸보면 어째 좀 이상하다싶었죠.

아는 루카스엄마랑 안드레아에게 물어보았죠. 그런거 없다네요.

유치원원장과 담임샘에게 조용히 물어봤죠. 그런데 아니라고 자꾸 우기더라구요.

전 워낙 눈치나 예감이 적중하는편이라 그래도 이건아닌데 싶어 그담날 강도(?)를 좀

세게해서 이를테면 난 바보아니다 자초지종을 알려달라, 그래야 고칠거 아닌가

애들운동교실가도 엄마들이 나눈치보고 슬금슬금 피하고 모두들 동시에 우루루

몰려다니고 이상하다고 물어봤더니 끝까지 잡아떼다가 제가 임의로 그랬죠.

누가 뒤에서 내욕하고 다니냐, 소문내고 다니냐 그러면 그건일종의 명예훼손이라

계속 분위기 이런식으로 몰고가고 유치원에서도 아무런 책임지지않고 회피하면

가만있지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드뎌 이렇게 털어놓더군요,,

그친구가 그런말을 많이 하고 다닌다고,, 사실이냐고,, 우리도 널 도와준다고,,

아무래도 아무런 이유없는,질투성소문인거 같다고,, 아동을 학대하면 내애들이 어떻게

그렇게 유치원에서 활달하고 인기많고 그림을 잘그리냐고(여긴아동의 그림으로 심리

치료를 하고 그집안의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알고 그런게 발달해있잖아요)

원래 독일인은 법, 변호사어쩌고 저쩌고 하면 엄청 약해지더이다.

그렇게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이유를 알아봤더니다름아닌 질투심이더군요. 기가차서,,

감히 캉코쿠년 너가 뭔데 독일땅에 들어와서 들어온지 얼마되지도 않은게 독일친구들과

같이 티타임갖고 어울려다니고 bmw몰고다니고 (이친군 이나이 운전면허증없더군요)

정원딸린 큰 저택에 (자긴 아파트 24평남짓한 보눙에 다섯가족살고있음) 아들있고 딸있고

(이친군 나보다 8살이나 많은데 아들만 둘이고일본집안에도 딸이 귀한 집이라 셋째를

딸가질려고 고령임신했는데 또다시 아들, 그래서 딸있는 나를 평상시무척부러워함),

영, 일, 독어 4개국어(맨날 저보고 한다는 소리가 독일온지 3년된거 치고 넘 독일어를 빨리

익혀서 잘한다고 언어에 소질있다고 전 영어를 하니 독일어배우는데 조금 잇점이 있는거

같은데 그래도 말은대충 하지만 귀가 안뚫린다고 그러고)를 하고 대졸출신이고

남편잘만나 공주대접받고 (울남편은 지금 저랑 결혼 8년차인데 세월이 갈수록 가족,

부인이 귀하다는걸 알고 감사할만큼 저한테 잘해주어요,

올겨울추위를 많이 타는 절 위해 한국식 사우나도 집안에 설치해줄려고 방 하나를 다

비워두고 주문했다고 하고, 저도 알죠, 별거아닌게 복이 많아서 감사하고 감사하다는걸)

한국갈때마다 남편이 뱅기표랑 용돈 꼼꼼히 챙겨주고(이친군 일일이 본인이

알바해서 돈벌어 일본감), 나이에 비해 난 동안이고 hubsch하다고 맨날 말로는

칭찬하는데 본인의 외모콤플렉스가 무척심한편, 난 외모가 모가 중요하냐고 너의

인간성의푸근함을느끼는데 그러고 이친군 독일말 네이티브수준이고 여기에 오래산거

비하면 독일친구가 거의 없어서

맨날 나 아니면 인도네시아친구들 정도,,

하여튼 적고보니 제칭찬도 아니고 무척 유치하게 들리는데어쨌건이걸로 인해 이

일본아줌마가일일이 혼자 비교하고 열등감갖고 콤플렉스갖고 그랬나봐요.

그걸 결국 콘트롤을 못하고 유치원자기애 담임선생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예전에 좀 알던

독일친구들, 시청직원들, 슈퍼에서도 모두모두에게 저에대한 이상한 소문을 내기

시작했는데더 황당한건 그게 2년정도 더 됐다는겁니다.

처음에는 슬슬 한두명에게 귀뜸흘리다가 이젠 굉장히 광범해지고 대범해졌다는거,,

그래서 전 가끔 참 의아하다고 이상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냥 따지기 싫어넘어갔는데 요번에 실상을 확인하고 안되겠더라구요.

심지어는 분위기 완전 괴상해지고 요상해진요즘에조차도전 그친구를 의심조차

하지않았거든요. 유치원원장에게 그런 얘길 직접듣고 뒷통수 한방 맞았죠.

남편에게 상의한뒤 변호사를 정했어요. 한국대사관, 영사관 다 전화하구 우리나라랑

달리 유럽은 명예훼손죄가 점점 소실되는 싯점이라 어떤 유명인에 한해 법적으로

효능을 발휘한다고들 하지만 전 소문이 넘 무성하고 돌아 좀 과장하면 이도시전체가

알정도로,,2년동안 씹고다녔으니 얼마나 퍼졌겠어요,, 소름끼치는건

얼굴색하나 변하지않고 그동안 저랑 웃고 밥먹고 휴가같이 다녀왔다는거,,ㅜ

무엇보다 전 그 괴소문으로 사람들이 멀쩡히 있어도 의심스러워보이고 사람들에 대한

신용이 완전히 떨어지고 우울증까지 올 정도로 심난하고 그러네요.

은근히 북한의 이미지를 저한테 대고 이친구가 저에 대한 비난에만 그치지않고 은근히

한국에 대한 혹평까지도 하는,,

그래서 영사관 전화했더니 그럴경우 특별한 대책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변호사사서 법정가서 싸우는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전 어떤 일본인단체가 아무런이유없이 고의적으로 대놓고 유럽사회에 한국을

비하무시하는 소문을 퍼뜨리면 대사관, 영사관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

더더욱 힘빠지게 서글퍼게 하더군요.

괜히 죄없는 직원에게 한국 국력좀 길러야한다고 소리치고,ㅜ

어쩼건 제가 잘아는 지인들이 독일은 욕하고 버럭소리지르는 사람이 지는거고

생글생글웃으면서 그게 사실이 아니고 전혀 소문을 모르는양 행동하고 다녀야한다고,

그리고 변호사 사 봤자

돈만 깨지고 사실 나한테 남는건 별로 없다라고,, 여러가지 충고를 해주는데요,

전 정말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서 하루아침에 (그러고보니 하루아침이 아니네요,

제가 곰탱이같이 이친구를 믿고 따르는 그 무수한 날동안 절 뒤에서 도끼질 했네요)

무슨 아동학대범, 싸이코로 몰려서 이상한 시선을 받아야되니, 제 친한 유럽친구들도 다

절 피하고, 뭘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남편도 가만두지못하겠다고 화내다가도 돈좀 들더라도 변호사고용해서 얼굴을

못들고 다니도록 해주겠다고 하다가도 우리가 같이 열받아서 난리치면 같은 수준된다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냅두라고도 그랬다가,,

정말 일본인 참 이상하죠?

제가 이친구에게 잘못한거라곤 넘 믿고 따랐던거, 넘 김치를 열심히 퍼줬던거

그거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나라대표도 망언을 퍼붓고개인들도 망말하고 그러니 일본은죄값을 다 치뤄서

정말 열도가 세계예언가말처럼 언젠간 가라앉을거 같아요.

전 정말 세계어디로 가든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심지어 딸아이는 독일자기

친구들에게 "안녕" "여기봐봐" 이런 한국말도 가르쳐주고 그러는데 이까짓 한명의

싸이코일본여자가 저뿐 아니라 한국을 헐뜯고다니니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군요.

저 지금껏 이런경우는 한번도 안당해봐서 정말 어이가 없고 잠도 안오고 우울하고

독일이 넘 싫어지고 그러네요. 여러분이 제경우라면 어떡할꺼 같아요?

제가 정말 그냥 넘어가면 안될거 같아서요,,

* 이런... 전 중국 비하할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어쩔수 없는 상황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이해 전달에서 많은 오해와 잘못은 있었네요. 이런 어이없는 악플들도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올린거 자체가 저의 실수일지도 모르겠지만.. 제 나름대로 조언을 얻고 싶었고 또 다른 분들도 이런 경험이 있나 해서 글을 올려봤던 겁니다. 이렇게 메인에 올라갈줄도 몰랐고 나쁜 말들 들을줄은 몰랐습니다.

25살이나 처먹고 집에서 돈만 받으며 중고딩같다? 허헛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직 제 앞가림 못하고 부모님 울타리에서 있는건 맞네요..

그리고 군대 갔다왔습니다. 이런말까지 안하려고 했지만 미국시민권 포기하고 군대 갔다 왔습니다. 또 이런 글 쓰면 뭔 욕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띨하고 모자라서 나이 스물다섯 처먹고 앞가림도 못한다.... 상황을 제대로 읽어보셨는지요.. 무턱대고 싫다 나 밥 못산다 이런 처지가 안되니깐 못했습니다.

제가 가이드 해달라고 부탁한것도 아니고 스스로 도와준다고 하니깐 그걸 그냥 됐다고 이렇게 말하겠나요? 그런 과정에서 상황이 이렇게 변한거지 제가 이렇게 만든건 아니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인으로서 쫀쫀해 보이고 싶지 않았고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한국이 가난해 보이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람으로서의자존심도 있고 해서 없는 척은 안합니다 그렇다고있는척도 안하구요. 이게 잘못된건가요? 일부러 못사는 척해야 하나요? 그렇다고 어디서든지잘사는 티 따위는 낸적도 없습니다. 전 그냥 잘 모르는 경우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구요...

그리고 제가 중국에 대한 물가를 확실히 모릅니다. 이런 말하면 뭣하지만 솔직히 한국 미국 일본보다는 싼편이라는 것만 알고 왔었습니다. 그래서 1~200원정도 쓰는건 별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다 주변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점점 이상하다 생각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던거구요... 제가 돈 얼마쓰고 이런 그냥 제딴에선 보통이라 생각했던 일이 돈지랄이니 돈자랑이라고 들으니 좀 어이가 없으면서 제가 세상 물정을 잘 몰라서 이런 오해가 생겼다고 혼자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루세끼 전부다 100위엔 썼다한적 없습니다.. 아침은 집에서 먹구요ㅡㅡ;

그리고 어학연수가 유학이 아니라는 말... 외국서 오래 산 저보다 한국말을 더 못하시나 보네요.. 소풍을 가면 그건 여행이 아닌건지....

그리고 준비 안하고 온거자체가 웃기다는 거.. 여기 깔작 두달있는데 여기서 중국이 어떤 나란지 알고 중국어는 이렇구나 이런거 맛보고 공부하는게 바보인가요?? 전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마다 다른거 아닌가요?

그리고 이 중국 여자가 이집 며느리라 매일 볼수 밖에 없지만... 학교 친구 새로 사귀고 그러면 자연스레 잘 안어울리게 될거구요... 제가 아무리 띨하지만 멍~ 하니 있진 않습니다.

전 사람관계 험하게 끊고 싶지 않구요. 원만하게 좋은 관계로 해결 하고 싶었습니다.

전 이 글을 올렸던게 그때 너무 답답했기에 올렸던 거구요..

이런 비유를 들면 정말 또 무슨욕을 들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악플로마음 다치는연예인들의 감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알겠네요. 이런 글 올려서 악플 봐도 마음이 상하는데... 악플 한번도 달아보지 않았지만... 정말 달게 못되네요.....

끝으로 이런 물의를 일으켜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말은 이런 경험이 있을수 있구나 하고 느꼈던거고 또 다른 분들이 중국뿐이 아닌 다른 나라가셨을때 이런 일을 조심하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글을 올렸던거구요... 전 이글이 왜 메인으로 올라갔는지 이해는 안되지만 몇일뒤에 이글 자삭하겠습니다.

많은 조언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중국 정말 얼마뒤엔 강국이 될거 몸으로 느껴집니다. 올림픽 지나고 한동안 공황이 있을거같지만... 괜히 중국이 최강국이 될거다라는 말이 나온거 같진 않네요. 그리고 메인 글에도 글을 올렸었지만 모든 중국인이 이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고작 여기만 와보고 중국인 평가하냐고 하는데 정작 한국에서 살아도 다른 지역 제대로 알고 그런말 하시는 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제가 말주변이 없기에 오해들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딴에도 발끈했기에 이 글을 다시 올리게 되네요....

중국분들도 이글 많이 읽으신거같은데 오해는 안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제 상황으로선 이렇게밖에 느낄수가 없었네요... 한국에서든 중국에서든 좋은일만 있던 사람들한테는 좋다고밖에 말 못하고 사건이나 사고를 당하고 안좋은일이 있었으면 그 나라를 그렇게 생각할수도 있다는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Ps. 저한테 목적과 목표가 없다고 한분이 있는데 제목표는 멀티링궈입니다. 남의 꿈 잘 알지 못하면 그런 심한말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아 그리고 왜 이 중국여자가 제 여자친구로 되어버렸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

원만히 좋은쪽으로 이 일 잘 해결하겠습니다~

모든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나도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결정했을 당시엔, 항상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외국인과 대화할 기대감과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미국 첫날 도착 당일에 공항에서 입국관리자가 물어봤을때, 얼굴부터 빨개지고, 그많은 입국자들 앞에서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모르겠다. 그게 내가 태어나서 처음 겪은 외국인과의 대화였고, 결과는 안타까울 만큼 처참했다. 나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입국관리자는 나를 향해 보라는 듯이 고개를 수차례 휘저으며 짜증난 듯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주위의 한국사람에게 도움을 받아서 무사히 입국을 할수 있었다. 팔리는게 뭔지 그때 처음으로 깨달은거 같다.

충격이 너무 커서, 이후론 외국사람들과의 대화가 너무 꺼려지고 망설여졌다. 미국에 첫발을 내딛은 유학생의 앞날이 그렇게 암울할수가 없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유학 오기 전에 영어 공부 더확실히 하고 올껄하며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4년전 내가 미국을 처음 도착한 느꼈던 심정들이다.

지금은 물론 미국생활에 적응했고, 대학도 열심히 다니며,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렇게 내가 웃으면서 옛날 추억들을 세계엔에서 얘기할수 있는게 모두 예전에 우연히 만났던 정신분열증 환자의 덕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인생을 이렇게 바꿔준 정신분열증 환자와의 만남에 대해 글을 한번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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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는 새학기가 시작 되기 전까지 한달 정도가 남아서 별로 얘기를 나눌 사람들이 주위에 없었다.

집에서 영어공부하며, TV 시청하며 그렇게 혼자서 영어를 많이 접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평일에는 근처 공중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자주 하곤했다. 집에 맨날 쳐박혀 있는것 보단 밖에 나와서 외국 사람들도 구경하고 싶었고, 그들의 생활도 볼겸해서..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당시 영어실력으론 친구를 사귀기란 꿈도 꿀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가 웬말인가,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하는것 조차 솔직히 싶지가 않았다.

근데, 내가 도서관을 자주 찾으면서 발견한 외국인

보통 사람들과는 달라보이는 외모하며, 사실대로 말해 띨해 보였던 외모, 그리고 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고있던 두터운 , 머리도 깎은지 오래된 보였고, 혼자 뭐라고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던 20 중반 백인 남자.

사실, 내가 미국에 오기전에 한국에서 정말 친한 친구 하나가 나한테 조언을 하나 해줬다.

“OO, 니가 미국가서 진짜 열심히 할려거든, 한국 사람들하고는 대도록 어울리지 마라. 영어를 배울려거든 영어만 쓰면서 살아라. 내가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하버드에 다니는 한국학생 한명은 길거리에서 미국 거지들하고 점심을 먹으며 얘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국사람하고는 상종을 안했다고 들었다. 니도 그런 마음 가짐으로 유학생활을 해라. 그러면 바보가 아닌이상 너도 틀림없이 영어가 늘꺼다. 제발 미국가서 실패하지 말고 성공해서 돌아오길 바란다.”

내가 미국인은 거지는 아니였고, 약간 정신상태가 모자란것 같아 보였다. 알고 보니 정신 분열증 (영화 뷰티불 마인드에서 주인공이었던 교수가 가지고 있던 ) ..그리고 정신 착란증

그런걸 떠나서, 도서관만 가면 볼수있었기에, 일단 나는 사람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대충 옆에서 말하는걸 들어보니,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것 처럼 혼자 궁시렁 궁시렁 거렸다. 그래서 하루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내에서 내가 아는 영어를 써먹어 봐야 겠다 싶어서, 일부러 그사람 옆에 앉았다.

쉬지 않고 계속 혼자서 대화를 하고 있는 그사람..

내가 한마디 했다. “이름이 뭐에요?”

그랬더니 그사람 나를 쳐다보면서 얘기한다. “조쉬그러고는 혼자 얘기를 한다.

..이사람 내말을 알아들었다. ㅋㅋ 웬지 모르게 그사람 앞에선 가슴이 떨린다던지, 얼굴이 빨개지는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대화가 가능하다는걸 알고 나니, 실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날 부터,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나서, 이사람과 대화를 하며 실력을 키우자고 혼자 결심을했다.

항상 혼자 있는 이사람한테는 내가 말동무가 되어줄수 있을테니 좋을테고, 나에겐 영어를 자연스럽고 편하게 쓰는 연습이 필요했기에 나한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are you ~ing 관해 공부를 하고 나면, 다음날에 도서관에 가서, 조쉬에게 물어봤다. Are you eating? Are you sleeping? Are you watching?

조쉬는 yes 아니면 No 대답을 짧게 했고, 못알아 들었으면 쪽을 바라보며 은근히 다시 말해주길 바라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전혀 싫은 표정도 만들지 않고 내가 싫은 행동하지도 않았다. 만약, 싫은 듯한 행동을 보였다면 아마 내가 거기서 그만두고 그를 혼자 내버려 두었을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인테넷을 이리저리 하면서 내가 물어보면 대답도 잘해주고 그랬다.

결국 , 몇일을 그렇게 조쉬를 상대로 영어 학습을 했다. 주로 나의 스피킹 위주의 대화. 내가 영어가 완전 초보였기에 아주 간단한 물음형식의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뻤던건 시간이 지날수록 입에서 다른 언어를 얘기하는게 어색하지가 않았다. 거기다 좋은건 내가 발음을 이상하게 하면, 조쉬가 고쳐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의자를 체어라고 하면 조쉬는 못알아들은 표정을 짓고, 내가 손가락으로 의자를 가르키며 체어라고 하면, 그때서야 조쉬는 췌어~라며 마지막 R 중요한 발음을 앞에서 확실히 보여줬다.

몇일이 지나니, 조쉬도 나를 알아보는 같았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자기 옆에 앉으면, 내쪽을 보며 살며시 아는 사람 보는 듯한 눈길을 준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 어제는 뭐했냐? 밥은 먹었냐? 몇시에 잤느냐? 운동하는거 좋아하냐? TV 뭘보냐? 등등 머리속에 있는 모든 영어의 지식과 단어를 통합해 질문을 시작한다.

그럼 조쉬는 대답을 하던지 아님 나보고 다시 얘기해주길 원하던지 아님 나의 발음을 고쳐준다.

그렇게 미국에서 누군가와 처음으로 편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조쉬도 나에게 뭔가를 물어봐주길 원했다. 그래야 나의 듣기 실력도 향상이 될거 같아서.. 그래서 하루는 내가 물어봤다. “ 나한테 물어볼꺼 없니?” 조쉬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냥 컴퓨터를 한다. 에구구, 뭐어때, 내가 너무 큰걸 바랬나, 라고 생각하며 그냥 없었던 일로 할려고 했다.

근데 갑자기 내쪽을 ~ 쳐다보더니, 조쉬가 이름을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가 아마 2주가 넘게 서로를 알아온 시점인걸로 기억한다..

조쉬에게 내이름을 말했지만, 발음이 어려워서 그랬는지 도저희 이름을 말하질 못한다. 댕규, 댄큐, 대튠, 태쿤, 답큠이런 젠장 여섯번을 말했는데 계속 엉뚱한 발음으로 내이름을 말하는것이 아닌가..엣다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이라고 불러라 그게 성이다 라고 했더니, 자식이 그때서야 실실 웃으면서 이러는게 아닌가

그의 갑작스런 환한 웃음에 어이는 없었지만, 그래도 보는 그의 미소에 나까지 덩달아 한참을 웃어버렸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가고 시간은 어느덧 학교 개학날이 다가왔다.

학교 개학후엔 공중도서관에 들릴 일이 흔하지가 않았다. 새로운 학교생활 적응에 바빠졌고, 새로운 친구들 사귀기에도 많이 바빴기 때문이다.

한달간의 조쉬와의 대화는 내가 다른 외국인들을 만났을때 생기는 어색함이나 수줍음 그리고 부담감을 완전히 없애주었다. 아마 그게 도움이 되어서 학기 초반에 시작을 할수있었던거 같다.

내가 성공적인 미국유학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국생활을 되돌려봤을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글을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한테 한가지를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쉬를 만난이후,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아주 소중한 인연이 될수도 있는 사람들을 그냥 모르고 스쳐 지나갈수 있는지를 느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아마 조쉬같은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쉬를 만나고 그로 인해 내가 살아온 24년의 인생에서 놓쳤던 진실을 하나를 깨달았다.

조쉬와의 만남이 계속될수록, 내가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는것을 알게되었다. 웃지 않는 사람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았을때 기분이 얼마나 좋아지는지도 알게되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전공을 간호학으로 정했다.

아픈 사람들, 병과 장애로 인해 사회로 부터 외면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늘진 얼굴속에서 환한게 웃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그게 어쩜 내가 사는 갑갑한 세상속에서 얻을수 있는 가장 보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회가 되면, 영화와 사진에서만 봐왔던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로 가서 굶주림에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내손으로 그들을 돕고 싶다.

조쉬를 만난이후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나의 친구가 될수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다르거나, 인종이 다르거나, 성격이 다르거나, 겉모습이 다르거나,믿음이 다르거나...

아무 부질 없다는 것을 조금 늦은 내나이 24살때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만날수 있는 친구의 폭이 정말 다양해졌고 넓어졌다.

나이와 인종을 떠나, 각기 다른 문화와 환경 그리고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내가 그들에게서 보고 배웠던 또다른 세상은 내가 유학을 와서 경험하고 얻은 가장 값진것들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4년전 우연히 만난 정신분열증 환자 조쉬로 인해결국 내가 보지 못하고 살았던 인생의 중요한 면을 배운것 같다.

하지만안타깝게도, 현제 조쉬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한다. 가끔씩 공중 도서관을 들릴 일이 생기면, 예전에 그가 자주 앉았던 자리를 찾아가보곤 했지만, 첫학기 시작 이후론 그를 보지 못했다. 만약 다시 조쉬를 만난다면, 물론 나를 기억할지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많은 얘기를 나눌수도 있을것 같고, 그를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잠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미국에서 불려지는 이름이 두개가 있다.

하나는 나의 진짜 이름이다. 왜냐면, 서류상의 이름은 면허증 이름과 같아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친한 친구들에게 그냥 ‘Kim’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물론 친구들이 이름을 안까먹고 발음하기 쉬워서 그러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조쉬가 처음으로 나를 부를때 ‘Kim’ 이라고 하고 나서 나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이나 해맑게 웃던 모습을 평생 기억속에 간직하고 싶었던게 나의 또다른 이유다.

세계 곳곳에서 열린 마음으로 넓은 세상을 대하는 멋진 한국 유학생들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가장 본질적으로 다른점은 이겁니다.

한국에서 수능 만점받고 서울대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예전 아주 심한 물수능때 딱 한번 그랬던적 있던걸로 기억). 특히 요즘같으면 뭐 만점이면 서울대 법대,의대는 따 논 당상이죠.어쨋든 학국교육에선 수능점수가 높아질수록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그만큼 높아집니다..

하지만 SAT만점받고 하버드에 탈락하는 경우는 수도없이 많습니다. SAT만점이 떨어지고 그보다 한 2~30점 낮게 받은학생이 입학하고 이러니 한국사람들은 햇갈려하죠. 하지만 그게 미국식 교육입니다.

단순히 시험성적으로만 학생들을 줄세우는것이 아닌 학생의 특출한 자질, 열정, 헌신, 성실성, 인간적 성숙도 같은 덕목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세이나 수상경력 같은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보는것이고 오히려 GPA,SAT보다 그런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명문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다 자기자신만의 특성을 가지고있고 딱 뭘 잘해야 하버드 간다 이런 기준이 없다는겁니다.

예를 들어 2007.2008학년도 가을 신입생 발표에서 하버드대는 SAT 수학 과목에서 800점 만점을 받은 학생들을 1100명이나 탈락시켰습니다. 예일대는 SAT에서 만점인 2400점을 받은 학생을 몇 명 불합격시켰습니다. 참고로 매년 SAT 시험에서 만점인 2400점을 받는 학생은 1년을 통틀어 겨우 수백 명 수준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비 리그 중에서도 최상위 대학이라 할 수 있는 프린스턴대 역시 GPA가 4.0인 학생을 수천 명 불합격시켰습니다.

증거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5&article_id=0000654645

본문 글쓴이말 대로라면 뭐 SAT만점에 GPA만점 받아버리고그러면 아이비리그 당연히 갈수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거죠. 아직도 미국교육시스템이 이해 안가십니까? 성적이 다가 아니라는겁니다.

우리나라 대학과 비교하면 서울대 법대생도 아이비리그 다 떨어질수있고 어디 한 한양대쯤 다니는 학생이 하버드 붙을수도 있다는겁니다. 그만큼 학생을 뽑는 '기준' 자체가 완전 다르다는겁니다.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시험성적 하나로 줄세워서 대학보내는 제도의 가장 큰 맹점은, 단순히 시험성적으로 측정할수 없는한 인간의잠재력은 깡그리 무시하고 영원히 낙오자 취급한다는겁니다.

어쨋든한국식 교육에 찌들어서 자꾸 선진국 교육제도에 대해서 이해못하고 태클거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PS:그리고 미국이나 다른나라에선중국의 북경대,칭화대나 일본의 동경대쯤다니는 학생들은 인정해줍니다. 하지만 서울대 다닌다 하면 별로인정안해주죠.

이건 전세계대학순위에서도 극명하게 보이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라서 불공평한 평가를 받았다구요? 그럼 우리나라보다 못사는 중국,인도의 대학들이 서울대보다 위에 위치해 있는건 어찌 변명하실꺼죠? 나라 규모가 작아서 그렇다구요? 싱가포르 국립대도 서울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냥 세계학생들과 경쟁하기엔실력이 딸리는겁니다. 인정할건 인정하자구요,


중국 정치선생.진짜선생맞나......?!?! [182]
14163| 2007-07-14

안녕하세요.저는 현재 중국에 거주하고 나름 유학생활을 하고있는

한국인유학생입니다.여기 올라온 다른 분들의 글들을 보니

다른나라에서 차별대우를 받아 기분이 나쁘셨던 글들이 많더군요.

일본 모 고급 호텔 식당에서 심지어는 화장실에서 까지요.

읽는내내 화나고 분했습니다.

저도 한국이 아닌 다른나라에 사는 사람의 신분으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정치시간이었습니다.물론 정치수업중이었고 내용은 '애국'에관한것이었습니다.

정치선생님은 열심이 수업중이셨고 전 그냥 정치책을 보고있었습니다.

근데 갑자기 시끌벅적 하던 교실이 조용해지더군요.

저는 무슨일인지 궁금해 두리번 거렸고 애들은 모두 선생님을 보고있었습니다.

평소엔 볼수 없는 상황인지라 무슨 내용이길래 저리 열심히 듣나 하고 귀기울여 들었더니

글쎄 한국인도 아닌 한국을 욕하고 있더군요.

화가치밀어올랐지만 참고 계속들었습니다.내용은.한국이 중의를 한의로 개명해

특허신청을 했다는 것입니다.그러면서 한국이 사기를 쳤다는둥 중의를 도난했다는둥.

나름 연설을 하더군요.저로선 정말 어이없었습니다.

분명 중의와 한의는 다른 부분이 많은데...한국인이 중의를 배워 더 개선해서 만든게

한의인데...어떻게 저런식으로 함부로 말할수 있을까 짜증부터 났습니다.

하지만 중의에 대해 아주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중국인으로선 그렇게 생각 할수도 있을꺼라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근데 더 어이없는건.한국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솔직히 누가 공자를 한국인이라 생각하며 그렇다고 합니까.그건 아무도 의심한적도

없는데 어디서 저런 정보를 가져와 학생들을 가르치는것인지...그러면서 비웃더군요.

하정말...화가났습니다.수업시간이라 소란은 피울수 없고.그냥 묵묵히 째려봤습니다.

저를 보자 갑자기 보통말로(한국어로치면 서울말.여기는 방언과 보통말이 매우 다른데도 많습니다.)"한국과중국의 사이를 가르지말자"이러는 겁니다.

내내 방언으로 한국을 욕하더니 갑자기 보통말이라뇨.황당했습니다.방언을 할줄은 몰라도

알아듣는 저를 선생은 못알아 듣는줄 알았던겁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화가 더 나더군요.그쪽에선 못알아 듣는 말로 욕하고 알아듣는 말로 아부떤거니까요.

그리고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수다를떨던중 그 얘기가 나왔습니다.물론 제 편을 들어준

친구들도 몇 있었지만.많은 친구들은 정치선생의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더 어이없는건 어느 친구가 제 편을 드는 친구들에게 mai guo zei(즉 나라팔아먹는 도둑놈)이라고 욕을 한것입니다.어떻게 잘못된 정보로 친구를 그렇게 욕할수 있는지.......

만약 저희 학교가 수준이 낮고 선생들의 학력 혹은 수준이 낮다면 이해할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지금보다는 덜 화가 났을수도 있었습니다.하지만.나름 국가급학교고 오성급학교라면서,

선생들도 최고급 선생들이라면서 이런걸 가르치는것을 보니 정말 말로할수없을만큼 화가났습니다.

대학생인 저희 과외선생님의 교수님중 한분은 수업중에 한국인들은 참 교활하다고 했답니다.한자를 쓰던 역사를 지우기 위해 한자로 되있던 책들을 한글로 바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랍니다.저는 그게 아니라 요즘 한자를 읽고 뜻을 해석할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너희도 고문(古文)배울때 현대말로 바꾸지않느냐고 똑같은 거라고 말했더니 그러냐면서 전부믿지는 않는 눈치였습니다.

잘못된 정보로 잘못 판단하는일은 당연히 있을수 있습니다만.선생으로써 잘못된 생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인들을 좋게 생각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중국인도 많고.

중국에 대해 않좋은 생각을 갖고 있는 한국인도 많습니다만.

이런 개인 감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로 알리고 퍼뜨리는 짓은

용납이 안됩니다.

한국인들은 다른나라 사람들 차별대우 하지 않고 상대방의 나라를 모욕하는 짓은 않하는

사람들이 됬음 좋겠습니다.

외국에 거주하고 자주 외국을 방문하시는 한국인들.

행동하나하나가 한국을 알리는것이라는 것 잊지 말아주세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비를 절제하며 평범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신흥 부자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3일 이같은 특성의 ‘욘족(yawns)’이 2000년대 새로운 엘리트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욘족(young and wealthy but normal)은 젊고 부유하지만 평범한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자산 붐이 일었던 지난 10년간 자수성가한 30~40대 억만장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축적한 부를 요트나 제트기 등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쓰지 않는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며,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즐기는 성향을 갖고 있다.

욘족의 소비 패턴은 1980년대 등장한 여피족(yuppies:도시에 사는 젊은 전문직 고소득층), 90년대 유행했던 보보스족(bobos:보헤미안의 정신적 자유와 부르주아의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 엘리트)과 대조적이다. 가령 여피족의 상징이 고급 ‘아르마니’ 수트와 ‘BMW’ 자동차라면 욘족의 상징은 캐주얼 브랜드 ‘다커스’다. 자녀를 키우는 방법도 남다르다. 아이가 평범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평범하게 자라길 바란다.

대표적인 욘족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51)이다. 비록 대저택을 소유했지만 왕성한 자선 활동과 어리숙해보이는 옷차림, 친밀한 가족 관계 등 욘족의 자격을 갖췄다. 야후 공동창업자 제리 양, 이베이 공동창업자 피에르 오디미어, 내슈빌의 억만장자 브래드 켈리도 이에 해당된다.

WSJ는 욘족이 아직 미국보다는 영국에 더 많다고 전했다. 욘족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기업인의 50%만이 돈을 버는 게 인생의 최우선 목표라고 답했다. 나머지 부자들은 아프리카에 나무 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스코틀랜드 기업가 탐 헌터 경을 역할 모델로 삼는다.

〈최희진기자〉
맥주는 어떻게 마셔야 가장 맛있을까.

물론 제일 중요한 것은 온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맥주를 너무 차게 마시는 경향이 있다. 온도가 높아지면 김이 빠지고 청량감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온도가 너무 낮으면 향과 맛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맥주 온도는 라거일 때 6~10도 정도가 적당하다. 에일은 이보다 약간 높은 온도인 10~15도 정도가 적당하다.

병째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세련돼 보이기는 하지만 맥주는 잔에 따라 마시는 것이 더 좋다. 병은 입구가 좁기 때문에 맥주의 향과 거품, 색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잔에 기름기 등 이물질이 묻어 있다면 맥주 맛이 미묘하게 변질되니 깨끗한 잔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맥주를 빨리 차갑게 하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두는 경우가 있는데, 그리 권할 만한 사항은 아니다. 급격한 온도 변화는 맛과 향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게다가 한번 얼었다 녹은 맥주에서는 본래의 향과 맛을 느끼기 힘들다.

맥주를 따를 때는 맥주가 잔 벽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한다. 맥주를 받을 때는 잔을 살짝 기울였다가 어느 정도 잔이 차면 수직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첨잔은 피할 것. 이미 따른 맥주는 탄산가스가 어느 정도 빠져나간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맥주가 더해지면 신선한 맛이 약해진다.

안주는 단맛보다는 약간 짭짤한 맛이 나는 것이 맥주와 잘 어울린다.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CEO들이 권한 여름휴가 책 베스트10`

- LG 사내 인트라넷 통해 임직원에게 추천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LG그룹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어 볼만한 책들을 사내 인트라넷에 게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CEO들이 직접 읽은 책 가운데 임직원들이 여름휴가 기간 탐독할 만한 책을 소개함으로써, 휴식과 함께 자기충전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15일 LG에 따르면, 구본준 LG상사(001120) 부회장은 미국의 장수기업들이 환경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하는지 그들의 경영철학과 차별점을 담은 `100년 기업을 디자인하라`(짐 언더우드)를 추천하면서 "글로벌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는 임직원들의 미래창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평소 인재경영을 강조하는 남용 LG전자(066570) 부회장은 조직에 열정과 창의력을 샘솟게 하는 리더십을 갖춘 유능한 인재를 확보·육성하는데 성공한 회사들이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시대임을 주목하고 인재관리의 전략과 원칙을 제시한 `인재전쟁`(애드 마이클스 外)을 추천했다.

박종응 LG데이콤(015940) 사장은 도요타의 경영 기법을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하고 있는 `도요타 벤치마킹`(와카마쓰 요시히도, 곤도 데쓰오)을 추천하면서 "우리가 현장에서 벌이고 있는 혁신활동이 고객중심의 진정한 개선인지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자기혁신과 자기관리에 관한 책들도 다수 추천됐다.

김반석 LG화학(051910) 사장은 평범하지만 자신의 잠재력을 신뢰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 자기 긍정의 성공학을 보여주는 `믿는 만큼 이루어진다`(노먼 빈센트 필)를 권유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051900) 사장은 소홀하기 쉬운 하루하루의 꾸준한 노력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계속하는 힘`(다카하라 게이치로)을 추천했고, 김태오 서브원 사장은 주인공이 에너지 넘치는 버스 운전사와의 만남을 통해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과 가정의 일상에서 활력을 되찾는 해법을 제시한 `에너지 버스`(존 고든)를 추천했다.

권영수 LG필립스LCD(034220) 사장은 주인공과 은사의 만남을 통해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고, 우리가 매사 용기를 실천하려 할 때마다 이를 가로막는 망설임, 나약함, 포기 등을 이겨내는 방법을 담은 자기계발서 `용기`(유영만)를 추천했다.

신재철 LG CNS 사장은 직원에서 리더의 위치로 승진한 주인공의 회사생활을 통해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행복주식회사`(켄 블랜차드)를 추천했다.

허영호 LG이노텍 사장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독자를 웃고 울게 만들며 지친 일상에서 활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도쿄타워: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릴리 프랭키)를 추천했다.

박진수 LG석유화학(012990) 사장은 각 문화권의 전통과 역사 등을 통해 형성된 문화코드가 일상생활과 비즈니스현장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소개함으로써 세계 고객과 시장을 이해하고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컬처 코드`(클로테르 라파이유)를 소개했다.

타워팰리스 1채는 쌍문동 한양 97채 값

(서울=연합뉴스) 강영두 기자 =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1채로 가장 싼 아파트 97채를 살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부동산정보업체 '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7월 첫 주 현재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1차 409㎡형(124평형)의 평균가격은 56억2천500만원으로, 도봉구 쌍문동 한양4차 36㎡형(11평형)의 매매가인 5천750만원에 비해 97배나 높았다.

구별 최고-최저가 아파트간 가격 차이는 강남구가 65배로 가장 크게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타워팰리스1차 409㎡형은 강남구에서 가장 싼 아파트인 대치동 선릉아이빌5차 26㎡형(8평형) 8천600만원에 비해 65배나 비쌌다.

최근 각종 개발 호재를 등에 업고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는 용산구도 최고-최저가 아파트간 격차가 50배나 벌어졌다.

한남동 한성아파트 29㎡형(9평형)의 평균 매매가가 7천200만원인 반면 이촌동 GS한강자이 307㎡형(93평형)의 가격은 36억4천500만원으로 조사됐다.

양천구, 영등포구, 서초구(이상 33배)와 송파구(31배)도 30배 이상 차이를 보였으며, 강서구(18배), 관악구(16배), 도봉구(15배), 서대문구(15배), 강동구, 종로구, 구로구(이상 14배), 마포구(13배), 중구, 광진구(이상 12배), 동작구(10배) 등도 10배 이상 격차가 났다.

최고가와 최저가의 차이가 가장 작은 지역은 강북구로 꼽혔다.

미아동 미아동부센트레빌 135㎡형(41평형)은 5억5천만원으로 번동 주공4단지 56㎡형(17평형) 1억350만원에 비해 5배 가량 비쌌다.

금천구(6배), 은평구(7배), 동대문구, 성북구(이상 8배), 노원구, 중랑구, 성동구(이상 9배)는 10배 미만이었다.

삼성, 세계 2위 휴대폰업체 등극..`모토로라 제쳐`
[이데일리 2007-07-15 15:47:38]
- 삼성, 2분기에 휴대폰 3740만대 판매
- 모토로라, 판매량 3500만~3600만대선 자체 추정

[이데일리 김국헌기자] 세계 상위 휴대폰업체들이 속속 2분기 실적을발표하면서, 삼성전자가 2분기에 모토로라를 제치고 2위 휴대폰업체로 등극한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가 2분기에 모토로라를 제치고 휴대폰 판매 2위 업체로 올라설 전망이라고 이이타임스와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주요 외신들이 13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2분기에 휴대폰 3740만대를 팔아, 분기 사상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49%, 전기 대비 8% 증가한 것.

반면 오는 19일 실적을 발표하는 모토로라는 2분기 휴대폰 판매량을 1분기 4540만대보다 급감한 3500만~3600만대선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2위 등극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련기사:
추락하는 모토로라..삼성 세계 2위 `초읽기`

1위 휴대폰업체 노키아도 모토로라의 시장점유율 하락에 직접적으로 수혜를 보면서 1억대 정도를 판매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1분기에는 9110만대를 팔았다.

단스케 마켓츠의 이카 라우볼라 애널리스트는 "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은 크게 떨어지고 있고, 하락세가 계속 이어질 수 있다"며 "노키아가 모토로라의 위축으로 빈 시장에서 직접적으로 수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모토로라를 제외한 휴대폰업체들의 2분기 실적은 모두 전기 대비 증가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4위 휴대폰업체 소니에릭슨도 약진했다. 2분기에 1분기 2180만대보다 14% 증가한 2490만대를 팔았다.